[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39. 기후위기 대응 저지한 獨 헌재

입력 2023-1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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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예산 전용은 균형재정 위반
경기진작 對 부채증가 놓고 딜레마

“독일의 ‘신호등 연정’이 붕괴할 수 있다!”

지난 15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헌재)는 코로나19 대처에서 남은 예산 600억 유로(약 84조 원)를 기후 및 디지털전환기금으로 전용하는 것이 기본법의 균형재정 조항을 위반한다고 판시했다. 단순한 헌재의 판결로 들리지만, 이 결정은 독일은 물론이고 유럽연합(EU)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EU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경제대국 독일에 이 조항과 결정은 사실상 긴축재정을 강제해 왔고 강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과 녹색당, 가장 친기업적인 자유민주당(자민당)으로 이뤄진 ‘신호등’ 연정이 조기 붕괴할 수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균형재정 조항이 독일경제 옥좨

기본법(헌법)은 109조와 115조에서 균형재정을 명시했다. 연방정부의 순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0.35%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경기침체나 자연재해, 전쟁과 같은 위기를 제외하고 구조적 적자가 이 선을 넘을 수 없다. 16개 주 정부도 같은 내용을 규정했다. 2009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 당시 이 개헌안이 연방하원에서 통과됐다. 과도기를 거쳐 연방정부는 2016년부터, 16개 주정부는 2020년부터 이를 실행 중이다.

당시 독일이 이런 조항을 일반법이 아니라 최고 법인 헌법에 도입하자 EU 회원국에서 우려와 비판이 있었다. 최대 경제대국 독일이 돈을 쓰고 지출해야 유럽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터인데 정반대로 지갑을 닫는 정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을 비판할 때와 같은 논리다. 중국이나 독일 모두 막대한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국인데 내수를 줄이고 수출에 더 치중한다. 그러면 독일과 교역을 하는 상당수 다른 EU 회원국들이 적자를 기록할 수 밖에 없다.

독일에서 균형재정 조항은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지난해까지 적용이 유예됐다. 2021년 12월에 집권한 신호등 연정은 지난해 추경예산에서 팬데믹 대응에서 남은 600억 유로를 기후 및 디지털전환기금에 지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야당인 중도우파 기민당·기사당이 균형재정 위반이라고 헌재에 제소했고 헌재가 이를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연립정부는 이 기금 지출을 정부 예산에 잡히지 않는 부외예산에 넣으려 했으나 헌재가 불허했다. 돈이 남아돌아도 예산에 넣으면 균형재정이 정한 부채 한도를 넘기에 이 가운데 일부만 지출할 수 있다는 아주 ‘웃픈’ 현실이다.

자민당은 감세와 균형재정을 강조하는 정당이고, 녹색당은 부자증세와 기후위기 대응을 우선시한다. 이 두 개 정당은 사민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 파트너다. 600억 유로를 기후 및 디지털전환기금 전용에 합의한 것은 당시 자민당과 녹색당이 연정을 지속하기 위한 오랜 협상 끝에 나온 결과였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이런 합의가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일부에서 신호등 연정이 붕괴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두 당 모두 아직은 연정을 깰 의도가 없다.

▲올라프 숄츠(왼쪽) 독일 총리와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 재무부 장관이 22일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에서 2023년 예산 토론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올라프 숄츠(왼쪽) 독일 총리와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 재무부 장관이 22일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에서 2023년 예산 토론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친기업’ 對 ‘기후위기 대응’ 충돌

자민당은 사민당 및 녹색당과 협의 후 균형재정 적용 유예를 올 해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신호등 연정’은 연방하원에서 과반을 보유하기에 적용 유예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헌재가 유예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독일 정부는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또 정부 지출의 대폭 삭감과 재조정, 그리고 요식업 부가세를 내년 1월부터 인상한다. 원래 이 산업의 부가세는 19%였는데 팬데믹이 발발하자 7%로 내렸다. 이 세율을 원상 복귀한다. 부총리이자 경제에너지보호부를 맡고 있는 녹색당의 로베르트 하벡 장관도 신호등 연정에서 균형재정 조항 개정이 어렵다고 현실을 개탄했다. 시급한 녹색전환 및 디지털 전환에 돈을 써야 경기부양에도 도움이 되는데 균형재정 적용 유예를 한 해 더 연장해 가까스로 가능해졌다.

사민당과 노동조합은 녹색전환을 팬데믹처럼 위기로 규정해 이 기금을 균형재정 조항의 예외로 만들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열흘 넘게 논의 후에 이게 연정에서 합의됐다.

반면에, 헌재의 판결 직후 기민당·기사당은 이제 연정은 지속할 의미가 없다며 오히려 조기 총선을 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지난해 7월 연방하원은 여야가 합의해 앞으로 5년간 국방비를 1000억 유로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특별목적 법인을 만들어 이 증액이 균형재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위기 앞에서만 여야가 균형재정의 예외에 합의했을 뿐 기후 및 디지털전환에서는 이런 합의가 불가능함을 이번 판결이 보여줬다. 일간지 쥐트도이체자이퉁의 칼럼니스트 헤리버트 프란틀은 최근 칼럼에서 이 균형재정을 “포퓰리즘에 기반한 가장 무의미한 조항”이라며 “이게 인프라 투자와 기후위기 대응도 가로막는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독일 경기침체는 ‘유럽’에도 악재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전망에 따르면 올해 독일 경제는 -0.5%로 침체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에너지 가격이 최소 2~3배 올랐고 최대 교역상대국 중국의 성장 둔화가 독일 경기침체를 몰고 왔다. 내년에는 0.7% 성장이 예상된다. EU나 유로존의 내년 성장률 1.3%를 훨씬 밑돈다.

독일의 균형재정은 비단 독일에 한정된 게 아니다. 올 해 말까지 단일화폐 유로존 20개 회원국은 안정성장조약을 개정해야 한다. 이 조약은 유로를 채택한 회원국의 정부 재정적자를 GDP의 3%, 공공부채는 GDP의 60% 이내로 제한한다.

1990년대 말 독일은 유로화 채택 후 회원국의 느슨한 재정 운영을 반대하며 자국의 경제모델을 유로존에 이식해 이 조약을 제정했다. 현재 개정 논의에서는 이 조약을 적용할 때 인프라와 교육 투자 등도 여기에 포함할까 등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경기진작에 필요하다며 인프라 투자를 재정적자에 산입하지 말자고 요구한다. 독일은 자국의 균형재정 조항을 근거로 반대한다.

이처럼 독일의 균형재정 조항은 독일은 물론이고 ‘유럽’의 경제도약도 어렵게 만든다. 이와 유사한 재정준칙 도입을 논의 중인 우리도 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대구대 군사학과 교수·국제정치학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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