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럽이 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를 90년 만에 집단학살로 인정한 이유

입력 2023-09-11 05:00 수정 2023-09-1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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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영 국제경제부 기자

‘홀로도모르’는 1932~1933년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대기근을 가리킨다. 당시 스탈린은 집단 농장 체제라는 명목하에 유럽 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를 옥좼다. 개인 농장은 국유화됐고 식량은 공동 분배됐다. 결과적으로 스탈린의 집단 농장화는 실패로 끝났고 우크라이나에서만 최대 350만 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단순히 스탈린의 정책 실패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고의적인 기아를 유발한 ‘집단학살’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곡물 상당수를 수출하거나 소련으로 보냈다는 게 이유였다.

90년이 지난 지금, 서방에서는 홀로도모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독일 의회가 그랬고 올해 들어선 5월 프랑스 의회가, 6월 룩셈부르크 의회와 크로아티아 정부가, 7월 이탈리아 의회가 집단학살을 인정했다. 이 외에도 체코와 루마니아, 영국 등 약 30개국이 전쟁 발발 후 유사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이 갑자기 홀로도모르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가 지난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사한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재빠르게 점령지 내 곡물을 반출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흑해 항구를 봉쇄해 우크라이나와 세계 간 식량 거래를 막아섰다. 이후 튀르키예와 유엔 중재로 흑해 곡물협정이 체결됐지만, 현재는 이마저도 러시아의 일방적 파기로 잠정 중단됐다. 독일의 로빈 바그너 의원은 “과거 기아에 의한 살인은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과 문화, 언어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목표로 삼았다”며 “당시와 오늘의 유사점을 놓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최근 몇 달에 걸쳐 점령지 내 식량 반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점령지 철도 인프라를 통합하고 2014년 강제병합했던 크림반도를 통한 곡물 운송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다시 러시아는 곡물을 인질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다. 과거와 차이점이 있다면 피해 범위다. 홀로도모르가 우크라이나에 집중된 문제였다면 이젠 전 세계가 식량 인플레이션과 굶주림에 직면했다. 서방이 잊혔던 홀로도모르를 다시 꺼내든 또 다른 이유다. 영국의 폴린 래섬 의원은 “러시아는 불법 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세계 식량 공급을 다시 막으려 하고 있고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수입을 방해해 기아를 일으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서방이 홀로도모르를 집단학살로 선언한 건 러시아를 향한 또 한 번의 경고다. 이를 기점으로 대러 제재의 고삐를 더욱 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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