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풍경] 낫지 않는 기침

입력 2023-05-3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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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승재,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왔어?” 7살 남자아이가 진료실 문이 열리자마자 쪼르르 내 책상까지 달려와서 재미있는 것은 없을까 기웃거렸다. 한동안 뜸하더니 최근 며칠간 자주 나타났다. 엄마 말로는 어젯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기침을 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운이 넘쳐 보였다.

“선생님, 저 기린은 뭐예요?” “청진기는 무슨 소리 들려요?” “선생님 집은 어디에요?” 반짝이는 눈으로 연신 종알대는 모습이 귀여웠다.

“승재야. 엄마랑 앉아봐. 어디 아픈가 보자.” 놀고 싶고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승재 얼굴에 가득 쓰여 있지만 나는 나의 일을 해야 하니 애써 모른 체했다.

매번 비슷한 이야기다. 잠은 안 자고 기침은 밤에만 심해졌다. 청진기 너머의 폐 소리는 깨끗했다. 처음에는 감기에 걸렸던 것은 맞으나 지금은 다 나아진 것 같고 진찰도 이상 없는데 아이는 잠을 못 잔다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어머니, 다행히 지금 진찰은 다 좋네요. 기침이 좀 오래갈 수는 있으니 약을 바꿔 드려볼게요.”

이야기 나누는 사이 진료실을 한 바퀴 돌며 구경 마친 승재는 벌써 바깥으로 나가 대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영락없는 그 나이대의 장난꾸러기 모습이다. 승재 엄마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선생님, 저도 소화가 안 되고 기침이 계속 나요. 저번에 주셨던 약 또 주실 수 있나요?”

“약은 드릴 수 있는데, 증상이 계속되면 그래도 내과 진료를 한번 보셔야 돼요.”

벌써 1~2주 간격으로 기침약, 소화제 등을 받아가는 일이 두 달째였다. 만성적인 증상이지만 그럴수록 검사들이 필요할 수 있으니 내과 진료를 보시라는 말도 꼬박꼬박했지만 승재 엄마는 민망해하며 배시시 웃기만 할 뿐이었다.

승재 엄마가 나가고 밖에서 간호사와 나누는 이야기가 얼핏 들렸다. 이혼한 남편은 연락이 되지 않고 양육비는 받지 못한 지 오래라는 넋두리를 마칠 때까지 승재는 마냥 즐겁게 병원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낫지 않는 기침보다 삶의 무게가 승재와 승재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기침약뿐이지만 진료실에서 짧게 기도했다. 좋은 꿈 꾸며 편안한 밤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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