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과연 중2가 이해할 수 있을까…지키기 어려운 불문율

입력 2023-01-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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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자의 기사 작성 불문율 중 하나는 '중학교 2학년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기’이다. 중학교 2학년의 지적 수준이라는 기준이 모호한 건 사실이지만, 기사에 전문 용어를 범벅하거나 논문처럼 난해하게 쓰지 말고 쉽게 쓰라는 뜻이다. 문제는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를 출입하면서 이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아졌다.

업계에서 사용하는 말을 그래도 옮기자니 기사가 어렵고, 일반 독자를 위해 풀어쓰자니 업계와 멀어졌다. 분량상 지분증명이나 작업증명, 스테이킹 같은 개념을 기사에 매번 풀어쓸 수는 없는데, 그러다 보니 기사가 어려워졌다. 물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어느 분야든 투자를 하려면 일정 정도의 공부가 필수이다. 중2에겐 어려운 PBR(주가순자산비율), 마진콜 같은 용어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가상자산 업계의 언어와 지식 장벽은 유달리 높다.

영어 역시 커다란 장벽 중 하나다. 대부분의 코인 백서가 영어로 쓰이고, 대부분의 블록체인 재단은 영어를 기본으로 자신의 생태계 전략을 소개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시장에서 가장 빠른 정보는 영어로 전해진다. 이렇다 보니 양질의 정보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해하고, 수준 높은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안에서 돈다. 트위터나 텔레그램을 열심히 하면 그나마 빠른 귀동냥이 가능하다.

혹자는 경제신문이니 업계 사람이나 투자자만 이해해도 괜찮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한데 가상자산 업계는 그 어느 업계보다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하다. 4차 산업혁명 같은 화려한 단어에 속아 다단계 코인에 평생 모은 돈을 날린 어르신이 허다하고, 묻고 따지지도 않고 ‘가즈아’를 외치다가 빚투 거지가 된 2030도 수두룩하다. 또 업계 종사자 중에서도 “이 업계는 FOMO(포모증후군)가 심하고,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며 고민하는 경우를 봤다.

업계에서는 백서 번역을 하거나 각종 리포트를 발행하며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 기사를 쓰는 본인 역시 정보 비대칭 해소에 그다지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이 든다. 출입처를 옮긴 후 몇몇 지인들은 내게 “기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은커녕 일반 직장인을 이해시키는 것조차 실패한 셈이다.

알찬 정보를 쉬운 언어로 전달하겠다는 포부를 요란하게 떠벌리는 게 이 글을 쉽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하지만 허황된 약속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기사를 쓰며 근로 소득을 버는 노동자로서, 기사를 읽는 분들이 화려하고 망령된 말에 속아 한 땀 한 땀 모은 소중한 근로 소득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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