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신문 칼럼을 쓰는 보람

입력 2022-12-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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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이투데이 신문의 지면을 빌려 몇 해 동안 이런저런 기명 칼럼을 썼다. 읽고 쓰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살지만 신문 칼럼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신문 칼럼은 이중의 제약 아래 씌어진다. 마감시간의 압박과 분량의 제한이 그것이다. 칼럼을 쓰면서 앎의 곤핍감과 더불어 글솜씨가 형편없다고 느꼈다. 사유의 맥락이 막히거나 끊길 때는 벽에 머리를 쿵쿵 박은 뒤에야 겨우 몇 줄을 이어갔다. 칼럼을 마무리해서 송고할 때마다 망설임이 컸던 것은 글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고, 미천한 앎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부끄러움이 덜어지지 않은 탓이다. 그러면서도 몇 해 동안이나 신문칼럼을 꾸역꾸역 썼는데, 돌이켜보면, 그 어려운 신문칼럼 쓰기를 단 한 번도 건너뛰지 않고 쓴 스스로가 대견해질 지경이다. 이번 칼럼이 이투데이 지면에 쓰는 마지막 칼럼이다.

바이러스 팬데믹 시절을 겪고, 악인과 불행의 분탕질을 응시하느라고, 우리는 지쳤다. 나는 문명의 질주에 멀미를 느끼고 심신이 피로해진 분들께 위안과 기쁨을 드리는 칼럼을 쓰고 싶었다. 경계한 것은 도덕적 훈육과 계몽에 치우치는 글, 누구를 훈계하려는 의도를 함부로 드러내는 것이다. 행동은 없고 옳은 소리만을 일삼는 도덕군자를 싫어한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이념, 한 점의 회의도 허락하지 않는 무오류의 종교, 영혼이 없는 과학, 함부로 경적을 울려대는 운전자들을 싫어한다. 동물 학대자들, 함량미달의 책들, 늘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정치가들, 탐식을 과시적으로 자랑하는 무신경한 자들도 싫다. 그런 부류를 싫어하는 까닭은 그것들이 악이 번성하는 일에 부역하고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든다고 믿는 까닭이다.

세상이 모루라면 신문 칼럼은 쇠붙이를 두드려 더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망치여야 한다. 신문칼럼은 너무 물렁물렁 하지 않고 때로는 망치와 같아야 한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신문칼럼들이 옥석을 가리지 않고 쏟아진다. 그 칼럼들이 다 진실을 증언하고, 매끄러운 논리로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묵은 사유와 듬성듬성한 논리, 까칠한 날것의 분노를 드러내는 수준 미달의 칼럼도 있고, 포악한 이념에 들리고 진영 논리에 고착되어 곡학아세로 세상을 일삼아 속이려는 비열한 칼럼도 나온다. 더 많이 가진 자들 편을 들고 거드는 자들, 제 잇속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 도무지 한 점 부끄러움조차도 없는 자들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칼럼을 쓴다. 오죽하면 ‘신문칼럼 속지 않고 읽는 방법’이란 책이 나왔겠는가?

두부는 새벽에 온다./두부는 잉걸불보다 먼저 온다./풀밭에 내린 이슬이 금빛으로 반짝이기 전/어머니와 첫닭 울음소리,/어제 헤어진 연인의 속눈썹에서 반짝이는 눈물,/광야와 미명 같은 것들이/두부와 함께 온다./새벽에 오는 것들은 다 옳다.

두부는 새벽에 온다./짐승과 구름이 첫 이슬 밟고 오듯이/두부가 온다./두부가 오는 일은 기쁘다./산벚꽃 피는 일과 소년의 선행들,/당신의 깨끗한 이마와 목례가 그렇듯이/두부가 오는 일은 기쁘다./닳은 무릎과 겨울의 문고리를 잡던 손으로/우리는 두부를 먹을 것이다.

두부는 새벽에 온다./이 세상엔 이별이 너무 많다./나는 두부를 먹고 난 뒤/이별로 다친 가슴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에서/에밀 시오랑의 책을 읽겠지./어머니가 내 게으름을 타박하겠지만/꿋꿋하게 내 일을 할 것이다.

두부는 새벽에 온다./두부가 오지 않는 새벽은 어둡다./한랭한 날씨가 지나고/천 년을 견딘 새 벽이 저기 버티고 섰다./우리는 실의 속에서/아직 도착하지 않은 두부를 기다린다./새벽 다음에 또 다른 새 벽,/우리 앞을 가로 막은 새 벽,/우리는 그 앞에서 두부를 기다릴 것이다.

졸시 ‘두부’

내가 쓴 ‘두부’라는 시다. 두부는 멀리서 오는 것들 중에서 아침 햇살, 벗, 음악 등등과 함께 가장 반가운 것이다. 내가 쓰는 칼럼이 방금 만들어 김이 오르는 하얀 두부와 같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만들어준 두부, 신선하고 맛있는 두부, 주린 배를 채워주면서도 영양가가 듬뿍 든 두부,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고, 불끈 힘이 솟는 두부 말이다. 날마다 쏟아지는 유통기한이 짧을뿐더러 의미가 금세 휘발하는 칼럼들 속에서 두부같이 맛있고 영양가가 듬뿍 든 칼럼을 찾기는 어렵다. 그런 칼럼을 쓰는 일은 얼마나 지난한가? 고백하지만, 나는 신선하면서도 영양가가 많은 칼럼을 쓰지 못했다. 역부족이었다. 늦었지만 큰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내면의 기율과 도덕을 더 단단하게 세우는 칼럼을 쓰지 못한 내 부족함에 대해 사과드린다.

나는 칼럼에서 무엇에 대해 썼나? 내 관심사는 현실의 원소들이다. 당연히 내 관심사를 재료로 칼럼을 썼다. 내 몸과 그것의 물질적 형상을 빚고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사유들, 이를테면 음식, 사랑, 불행, 재난, 죽음, 질병, 날씨, 장소, 시간, 취향, 타인, 풍속, 불면, 고독, 태도, 여행, 정치, 망각… 같은 주제를 즐겨 썼다. 몸은 경험 일체가 표면에 각인되는 현장, 내 의심이나 불안이 폭발하는 자리다. 신체를 거점 삼아 사건과 사태들, 풍속과 유행, 두루 읽은 책을 촉매로 사유를 빚을 때 먼 것을 취하고 가까운 것은 뒤로 밀쳤다. 시적 직관과 이미지들, 분방하게 부푼 상상력이 먼 것에서 광역 표상을 데려올 때 사유는 더 자유롭고 활달해진다. 물론 내 몸은 내 것만이 아니다. 몸은 언제나 타인들과 연루된 관계 속에서만 내 것일 테다. 또한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몸은 개별자의 몫으로 귀속하지 않는다. 시대의 모순과 갈등에 반응하는 몸의 소유권은 여럿이 나눈다.

저기 한 어린아이가 혼자 울고 있다. 그는 왜 우는가? 어린아이가 공연히 혼자 울고 있을 리는 없다. 헐벗고 우는 아이의 곡절과 그 아픔을 품고, 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씻겨주는 글을, 세상의 억울한 자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의 속사정을 세상에 알리는 글을, 더 나아가 깨끗한 양심을 가진 자들의 안녕과 평화에 보탬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신문 칼럼은 보고, 겪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담백하게 문장으로 쓴 것이 좋다. 억지 논리와 무례한 주장이 일체 없이 오직 글쓴이의 감정의 결이 드러나고, 정직함이 도드라지는 칼럼이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이를테면 봄날 산책길에서 만난, 흙바닥에 압착된 채로 죽은 두 뼘 길이로 생을 마친 어린 뱀을 슬퍼하는 문장, 혹한의 아침에 사지가 굳은 사체로 발견된 길고양이의 죽음에 연민과 죄책감을 공유하는 칼럼도 좋다. 우리 공동체가 겪는 기쁘고 슬픈 일에 공감하고 올바른 삶의 태도를 한 줄의 깨우침을 담은 칼럼이 좋다. 그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 기초생활수급자들, 중소 상공인, 최저생계비를 벌기 위해 산재 위험을 무릅쓰는 용접노동자들, 소년공들, 그밖에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칼럼이 좋다. 그들의 열악한 처지에 분노하고, 그들을 옥죄는 가난과 부당한 따돌림에 함께 슬퍼하는 칼럼이라면 더 좋다. 저녁이 있는 삶에 기여를 하고, 제 잇속보다 남에게 상냥하고 품성이 좋은 이들이 더 번성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칼럼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가늠하는 나침반 같은 칼럼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이투데이에서 내 칼럼을 더는 볼 수 없겠지만 나는 겸허한 독자로 돌아가 나보다 더 많은 사색과 공부를 한 분들이 쓰는 칼럼을 읽고 배움을 얻고 싶다.시인·인문학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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