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민법 제98조] ③ 엘리의 이야기, 반려견이 차에 치여 죽었어요

입력 2022-07-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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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98조는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다. 동물보호법에 반려동물 간 물림사고에 대한 규정이 없고, 동물학대 처벌 수위가 낮으며 동물이 차에 치여 죽더라도 형사처벌이 어려운 것 모두 이 조항 때문이다. 국회는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바뀌지 않는 법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분으로 이어져 동물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사회에 자리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이영자(가명) 씨의 반려견 엘리는 지난해 차에 치여 1년 8개월의 짧은 생을 마무리했다. 함께 살던 이영자 씨의 딸은 엘리가 사망한 곳을 보면 다리가 떨려 걸을 수 없는 상태라 다른 지역에 집을 얻어 살고 있다.

▲차에 치이기 직전 엘리의 모습 (이영자(가명) 씨)
▲차에 치이기 직전 엘리의 모습 (이영자(가명) 씨)

작년 5월, 이영자 씨는 산책을 위해 엘리와 집을 나섰다. 그게 마지막 산책이 될 줄 이영자 씨는 꿈에도 몰랐다. 어린이가 많이 찾는 단지 내 공원 근처에 있던 엘리는 시속 60km의 속도로 달리던 소형차에 치였다. 단순 부상에서 그칠 수 있던 사고는 자동차의 빠른 속도로 사망 사고가 됐다.

차주인 B 씨는 사고 직후, 급히 할 일이 있다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바로 차를 몰고 사라졌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B 씨에게서 연락이 없자 사과를 듣고 싶었던 이영자 씨는 직접 전화를 걸었다. B 씨는 화를 내며 "식사 중인데 왜 전화를 하냐, 나도 힘든데 왜 나에게 그러냐"면서 보험회사와 통화하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보험회사에서 분양비·장례비 정도는 지급이 된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B 씨는 마음을 바꿔 자동차 보험료가 올라갈 수 있으니 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했다. 너무한 게 아니냐는 이영자 씨의 하소연에 B 씨는 "협박하는 것이냐, 경찰에 신고해서 합의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이영자 씨는 반려견이 사망하고 딸이 집을 옮길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는 B 씨에게 화가 나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이에 이영자 씨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달 16일 수원지법 오산시법원은 B 씨가 이영자 씨를 비롯한 원고 3명에게 각 1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려동물 죽음에 법적 책임 물으려면 '고의성' 입증돼야

▲반려동물이 차에 치여도 가해자를 형사처벌하기는 어렵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려동물이 차에 치여도 가해자를 형사처벌하기는 어렵다 (게티이미지뱅크)

형법 제369조의 특수손괴죄를 적용하려면 '고의성'이 입증돼야 한다. 의도를 가지고 물건을 부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고의가 아닌 과실로 사람이 사망할 경우 과실치사가 적용돼 처벌받는다. 고의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반면, 동물의 죽음에 대해 사람의 형사 책임을 묻는 데는 '고의성'이 핵심이다. 동물은 물건이기 때문에 과실치사가 아닌 형법 제369조 특수손괴가 적용돼서다.

반려동물 사망사고에서 고의성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이영자 씨 역시 엘리 사망 지점 주변에 있던 자동차들의 블랙박스 영상, B 씨와의 대화 녹취파일 등을 모두 경찰에 제출했지만 사망사고가 고의임을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고의'냐 '과실'이냐에 따라 위자료 액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영자 씨의 경우 엘리의 사망에 B 씨의 고의가 없었기 때문에 위자료 액수가 50만 원으로 크지 않았다(위에서 언급한 손해배상액 100만 원 중 위자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엘리 구입가격, 치료비, 장례비다).

반려동물이 죽은 이유에 대해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과정상의 어려움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시도가 좌절될 가능성이 커진다. 동물이 죽어도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작다는 생각이 다수에게 생긴다면, 동물의 생명을 경시하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마하트마 간디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이 보인다'는 말을 했다.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동물이 살기 좋은 사회라면 그보다는 상대적 강자인 사람에게도 괜찮은 사회일 것이라는 뜻이다. 동물에게조차 잘하지 못하는 사회가 사람에게는 괜찮은 곳일지, 동물에게 하던 잘못된 행동이 쌓여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확장되지는 않을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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