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세법은 누가 만들까?

입력 2022-04-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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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동 배재대 경영학과 교수

‘권력분립의 원칙’,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다. 권력분립의 원칙은 국가 권력을 입법·행정·사법권으로 나눠 국회, 행정부, 법원이 가지도록 하는 국가통치구조 원리 중 하나다. 요즘 초등학생도 배우는 내용이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실제로는 국가 권력을 두부 자르듯 깨끗하게 나눌 수 없다. 나아가 헌법이 수권한 권한을 두고도 통치기관끼리 긴장 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꽤 된다.

입법권을 보자. 원칙적으로는 국회가 입법권을 장악한다. 국회의 본질적이고 고유한 권한으로까지 본다. 그런데 헌법 제52조에 따르면 정부도 법률안 제출이 가능하다. 물론 법률안 심의와 의결은 여전히 국회 몫이다.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두고 좋게 말해 국가 기능의 엄격한 분절이 아닌 상호견제와 균형이라 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국회의 입법권 축소 경향은 지속되고 있다. 15대 국회 이후로 줄곧 의원발의 법률안 건수가 정부제출 법률안 건수보다 많았지만, 가결률로 보면 오히려 후자가 더 높다(20대 국회에서 의원안은 6.7%, 정부안은 27.9%).

현대 사회가 복잡다단하고 고도로 발전한 까닭에 법이라는 그릇에 담을 내용 또한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이 많다. 관련 분야의 업무를 상시로 수행하는 관료들의 전문성과 축적된 경험, 조직력으로 정부가 입법에서 주도권을 쥐는 현상은 기실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우리와 달리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에서도 정부와 대통령은 소위 ‘제1의 입법자’로서 입법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지만 입법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현상이 견제와 균형에서 벗어나 권력분립 취지를 훼손한다면 문제가 된다.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세금과 관련해서 널리 회자하는 말 중 하나다. 국민의 재산을 빼앗아가는 세금은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만든 법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정착민들이 영국에 세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내건 구호로 알려져 있다. 통상 우리나라 헌법 제59조를 ‘조세법률주의’로 이해한다. 조세법률주의는 납세의무자, 과세물건, 세율 등 과세요건을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새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표 없이 세금 없다”와 같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세금의 본질적인 사항을 직접 정하라는 뜻이다.

최근 종합부동산세법이 조세법률주의를 위반했다는 주장이 언론에서 자주 언급된 바 있다. 종부세 과세표준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결정을 법률이 아닌 정부 권한에 두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위헌에 이를 정도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여당 의석수가 법안 통과에 넉넉한 지금 상황에서 앞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정부가 자주 써먹는 ‘청부입법’을 통해 조세법률주의 위반 시비를 피하면서 결국 같은 세 부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까닭이다.

국회가 정치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고 실력을 갖추어 고유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면 자의든 타의든 입법권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무분별한 법안 발의의 남발은 고스란히 자기부정의 날이 선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의원입법을 자중하거나 심지어 통제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물론 세법은 다른 법역과 달리 국가재정 수입의 근간이고 경제주체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지금까지 의원입법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런데 정부 역시 세법의 전문성을 완전히 갖추었다고 보기 힘들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디지털세 도입을 위해 국내 최대 로펌 두 곳에 연구용역을 맡겼다고 한다. 입법의 아웃소싱, 특히 로펌의 입법 개입은 주의 깊게 감시해야 한다. 일개 로펌이 대의 권능을 가질 수 없다는 당연한 이유뿐만 아니라 그들이 공익단체가 아닌 까닭이다. 정부가 조세정책을 선도하는 기존 지위와 관행을 인정하더라도 국회는 세금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정부가 내민 세법안을 제대로 검토할 줄 알아야 한다. 의정활동을 보조하는 기관인 국회예산정책처나 국회입법조사처의 조세 관련 전문인력 확충도 필요하다. 권력의 집중은 권력의 횡포로 이어진다는 오랜 경험칙과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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