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기시다 총리

입력 2022-03-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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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우교수, 정치학 전공)

2월 24일 러시아군이 드디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수도 키예프의 군사시설이 공습당했고 우크라이나 북부에 있는 벨라루스에서 러시아 지상부대가 군용 차량으로 월경한 것이다.

각국 정상이 단번에 긴장감에 휩싸였는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움직임은 둔했다. 그런 기시다 총리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보다 강력한 반응과 행동을 일본이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라고 ‘일본’이라는 국명을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요청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에 대해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달 24일 오전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우크라이나 정세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관해 질문하자 기시다 총리는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소중히 생각하겠다”, “국익을 생각해 판단할 것”이라고 손에 쥔 자료를 보면서 답변했다. 총리 자신의 단호한 의지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답변이었다.

같은 날 낮 12시 ‘러시아, 군사 작전 개시’라는 긴급뉴스가 보도됐다. 그런데도 예산위에서 예정대로의 질의응답이 계속되자 입헌민주당 국회의원이 “국가안보회의(NSC)를 개최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기시다 총리에게 물었다. 이에 기시다는 괴로운 듯한 표정으로 “적절한 시기에 개최하겠다”고 답변했고 예산위가 휴식에 들어가자 기시다 총리는 겨우 NSC를 개최했다. 기시다 총리는 야당 국회의원이 지적하고 나서야 비로소 NSC를 개최한 것이다.

이렇게 소극적인 기시다 총리의 모습이 최근 계속 보도되면서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 직후에는 60%대였던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현재 40%대까지 떨어졌다. 그 원인은 기시다 총리의 오미크론에 대한 방역 실패와 외교에 있어 약한 결단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보이콧 결정이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신청 결정 시에도 기시다 총리는 보류를 결정했으나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극우세력의 압박으로 자신의 결정이 뒤집혔다. 이번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우려가 있는 가운데 2월 15일 러일 경제협력회의를 열어 국제정치 감각을 의심받기도 했다.

NSC 종료 후에도 기시다 총리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연대해 신속히 대처해 나가겠다”, “상세한 정보의 수집 및 정세 파악에 노력하겠다” 등 교과서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하면서 일본 국민이 답답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일본 국민은 이번만큼은 기시다 총리의 결단력 있는 행동을 기대하고 있는데 항상 지나치게 신중해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최근에는 신념에 따라 일을 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훨씬 나았다는 일본인들의 목소리가 댓글에 자주 올라오는 상황이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정권 때 외상을 4년 7개월이나 지냈다. 외상 재임 기간만 말하면 그는 일본 역대 2위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로부터 뛰어난 외교력을 느낀 사람이 많지 않다. 그는 외상이었을 때 외교에 관한 강의를 듣는 것을 좋아했지만 스스로 외교적 결단을 내린 적이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그런 기시다 총리도 2월 24일 밤, 온라인 형식으로 열린 주요 7개국(G7) 긴급 정상회의에 참여하면서 각국 정상들과 함께 러시아를 강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기시다 총리도 이제 상황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이 보인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기시다는 금융, 수출관리 등의 분야에서 다른 G7 국가와 함께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총리의 변신에 많은 일본인이 깜짝 놀랐다.

기시다 총리는 G7 국가들과 보조를 맞춰서 2월 27일 밤 기자들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의 자산 동결 등 추가 제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 유럽 각국으로부터의 요청을 근거로 SWIFT(달러 베이스의 국제적 결제 네트워크)로부터 러시아 대표 은행들을 추방하는 조치에 일본도 참여할 방침임을 공표했다.

놀랍게도 기시다 총리는 그동안의 약한 어조가 아니라 강한 어조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3일 정도 사이에 기시다 총리의 자세가 크게 바뀐 것이다. 그는 일본의 독자적인 조치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이미 표명한 1억 달러 규모의 차관에 더해 어려움에 처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1억 달러의 긴급 인도적 자금도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해 이제 일본인이 원하는 총리의 모습을 보였다.

일본이 러시아와 계속 교섭해 온 것이 쿠릴열도 문제를 포함한 평화조약 교섭이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입장이나 고령이 된 쿠릴열도 주민 마음에 어떻게든 잘 보답하고 싶다는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의 상황을 감안할 때 평화조약 교섭 등의 전망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한편 아베 전 총리는 러시아를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지난달 27일 TV에 출연, 과거 푸틴과 직접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아베 전 총리는 “푸틴은 서방국가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고 여러 번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밝힌 것이다. 총리 시절 푸틴과 개인적으로는 우호 관계를 구축한 아베 전 총리가 러시아의 입장에도 어느 정도 이해를 나타낸 것이다.

갑자기 바뀐 기시다 총리의 자세와 기시다를 압박하면서도 푸틴의 입장까지 피력하는 아베 전 총리.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변화하는 전·현직 총리의 태도를 일본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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