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당신이 누군지를 알고 싶다면

입력 2021-11-25 05:00

시인, 인문학 저술가

가을은 조용히 끝났다. 우리는 자기의 생에 몰두하느라 저마다 분주했다. 그 사이 첫 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렸다. 어느 차갑고 환한 아침에 불현듯 한 계절이 끝났음을 깨닫는다. 오늘 아침에 거울에서 지난 계절보다 더 늙은 얼굴을 보았다. 잔주름이 늘고, 피부가 늘어진 그 얼굴은 낯설다. ‘나’라고 주장하는 이 얼굴은 항상 전면을 응시하는 벽이다. 얼굴은 검은 구멍을 가진 벽이다. 우리는 이 자아의 기호적 표면을 날마다 거울에 비춰보며 살아간다.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춰보는 행위를 무의식의 객관적 성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거울 속에 떠오른 얼굴을 향해 묻는다. 그런데 거울 속의 얼굴은 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다.

거울은 세계를 이쪽과 저쪽으로 경계를 나눈다. 거울이 드러내는 것은 사물의 표면이다. 눈과 코와 입을 가진 얼굴도 그 표면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마 거울의 발명과 얼굴의 발명은 그 기원이 하나일 것이다. 인류는 제 얼굴을 보려고 거울을 발명한다. 인류는 왜 굳이 제 얼굴을 보고 싶어 했을까? 얼굴에서 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저보다 더 성스럽고 전지전능한 초월자를 향한 무의식이 갈망이 우리를 거울로 이끌었을 테지만 이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한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에서 보는 것은 신에서 한껏 멀어진 채로 헐벗은 존재의 가난이다. 우리가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을 짓는 것은 그 때문이다. 거울은 진리의 매개자가 아니다. 거울은 단지 현재라는 순간에 나타나는 표상들의 집합을 보여줄 뿐이다.

거의 구십여 년 전에 시인 이상은 거울을 통해 제 분열하는 얼굴을 보고 놀란다. 그 놀람이 ‘거울’이라는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요//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또꽤닮았소/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이상, <1934 카톨릭 청년 >) 거울은 동일한 것의 차이를 드러내며 얼굴을 여러 개로 쪼갠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는 다르다. 거울을 매개로 하는 둘은 닮았지만 다르다. 이상은 거울이 자기 동일성을 쪼개고 분리하는 도구 사물이라는 걸 인식한다. 무엇보다도 거울은 타자에게 부딪쳐 나온 ‘나’를 내게로 되돌려주는 도구다. 이런 맥락에서 거울의 타자성은 두드러진다.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에 비친 우리 얼굴은 달라진다.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어딘가를 바라보던 자, 죽은 새를 보며 가여워 하는 자,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던 자, 우리가 함께 창공에 떠오른 별자리를 응시하던 자,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었을 때 망연해진 채로 실망을 보여주던 자, 그는 하나의 얼굴을 가진 자다. 이 얼굴은 예순 번 이상의 봄과 가을을 겪어낸 얼굴이다. 얼굴은 비누처럼 날마다 닳는다. 비누가 그렇듯이 얼굴은 소모품이다. 하지만 닳는다고 해서 얼굴이 사라지는 법은 없다. 우리는 끝없이 되살아나는 이 얼굴과 함께 생을 살아낸다. 얼굴은 계절이 만든 소모의 흔적, 찰나의 감정이 현현하는 막(幕), 세월을 탕진한 자의 허망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자리다. 오늘 아침 나는 내 얼굴에서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더 이상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의 절망을 보고야 말았다.

의도하건 그렇지 않건 얼굴은 한 시대의 표정을 언뜻 드러낸다. 그렇다면 표정이란 무엇인가? 무서운 표정, 상냥한 표정, 천진한 표정, 어색한 표정, 난감한 표정, 낯선 표정……. 표정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 표정이 주체 내면에 숨은 감정을 반영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인 이해다. 표정은 감성과 취향의 영역이 아닐뿐더러 개성이나 의지의 영역도 아니다. 표정은 도상학적으로 삶의 다양한 형태를 외시한다. 얼굴이 골상학의 영역에 있다면 표정은 얼굴로 환원되지 않는 불가역적 시간을 드러낸다. 표정은 외부의 힘과 질서에 반응하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표정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대응, 삶이 우리에게 강제한 수고와 노고에 대한 힘겨움을 드러낸다. 아울러 표정은 세월의 속절없음과 타자의 외재성에 대한 조응이다. 항상 얼굴이 포획하는 것은 주름들과 안면 근육의 요동이다. 표정은 얼굴의 비인간성에 견주자면 훨씬 더 인간적이다. 이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그렇다고 슬픔이나 고통으로 일그러진 것도 아니다. 행복도 고통도 없는 얼굴! 타자를 향하여 내면의 외면화를 이룬 채 그 동일성을 유지하는 얼굴! 이 얼굴은 삶과 죽음 사이 분열하는 자의식이 등장하는 무대이고, 생존의 히스테리와 나르시시즘이 증식하는 주름진 표면이다. 얼굴은 아무 동요도 없이 고요하게 정지해 있다. 나는 이것에서 증식하는 현대의 서사를 끄집어낸다.

현대 철학자는 얼굴-기계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이 말은 이상하지만 받아들이자. 본디 철학자란 모호하게 말하는 자, 이상하게 말하는 자가 아니던가! 이 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얼굴은 동시적인 지층들과 상이한 속도들 속에서 끝없이 연결접속을 만드는 기계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얼굴이 “흰 벽-검은 구멍”이라고 말한다. “인간 안의 비인간적인 것”이라는 한에서 얼굴은 말하고 웃거나 찡그리며 감정을 드러내는 자의 외부를 둘러싼 표피 그 이상이다. 얼굴이 공공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소유로 귀착하지도 않는다. 얼굴은 하나의 표면으로,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무언가를 끝없이 만드는 공장이고, 그 공장에 속한 생산 기계다. 다시 이상하게 말하는 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얼굴은 “빈도나 확률의 지대를 규정”하고, “그 자체로 잉여”이며, “주체성의 검은 구멍, 카메라, 제3의 눈”이다. “얼굴은 공명이나 주체성의 잉여들은 물론이고 의미생성이나 빈도의 잉여들을 갖고 자신을 잉여로 만든다. 얼굴은 기표가 부딪쳐 튀어나와야 하는 벽을 구성하며, 기표의 벽, 프레임 또는 스크린을 구성한다.”(‘천 개의 고원’) 누구나 산다는 것은 얼굴을 갖고 산다는 뜻을 함축한다. 면목이 없다. 면목은 얼굴을 지칭한다. 따라서 이 말은 의미와 당위가 휘발되었음을 고백한다. 얼굴이 없다는 것은 살 가치가 없을 만큼 수치스럽다는 뜻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굴은 생각, 의지, 욕망을 내보내는 살의 가면, 파동의 표면이다. 이것은 항상 고요하지 않고 수축하고 일그러지며 출렁인다. 각기 다른 외부의 힘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얼굴은 그 자체로 매체이자 메시지다. 얼굴은 정지한 채로 많은 말을 한다. 우리는 타자의 얼굴을 보고 타자가 보내는 메시지를 수신한다. 현대의 얼굴은 일그러진 얼굴이다. 그 일그러짐은 얼굴이 행하는 기예의 증진 속에서 증식한다. 이미 소름끼치는 괴물로 바뀐 얼굴들이 많다. 얼굴은 시대의 속살을 파먹으며 기괴하게 바뀌고 있다. 인간은 얼굴 안에 에일리언을 품고 산다. 내가 얼굴에서 자꾸 도망치는 까닭이다. 얼굴은 나이가 들면서 변한다. 나이가 들면 삶이라는 광대놀음에도 지치고, 내면의 역동성과 투지가 줄며 안색은 창백해지고 얼굴을 감싸는 피부는 헐거워진다. 노년의 얼굴은 주름이 많고 보기 흉하게 살이 늘어지는데 얼굴이 세월의 흐름과 변화와 연동되는 까닭이다. 달라진 얼굴은 현실의 흐름과 변화를 수납하는 미시물리학적인 결과다. 언제 처음 나는 거울을 보았을까? 그 기억은 아득하고 모호하다. 오늘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은 어땠는가? 당신이 누군지를 알고 싶다면 거울을 보라. 거울에 비친 얼굴이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당신의 진면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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