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호의 세계경제] 코로나19 백신, 시험대 오른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입력 2021-05-10 05:00 수정 2021-05-10 11:27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미국은 3월 초 ‘국가안보전략 잠정 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y Guidance)’을 발표하고, 국내 문제 해결과 함께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통해 자신감과 힘에 기반을 둔 외교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분야의 하나로 코로나19 문제의 해결을 들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미국의 행보를 보면 미국이 진심으로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원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5일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IPS)’의 일부 규정을 일시 유예해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가 승인될 경우, 각국이 직접 백신 생산량을 늘리고 개발도상국 등에 더 저렴하게 백신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접근 방식은 세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시간의 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질수록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해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백신 특허 공유는 제약사 설득과 WTO에서의 국제합의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독일 정부는 6일 지식재산권 보호는 혁신의 원천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특허권을 갖고 있는 화이자나 모더나도 지재권 유예가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비상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특허권을 일시적으로 유예할지 말지 협의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어떻게 당장 생산을 늘릴 것인지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둘째는 생산 가능성의 문제다. 만들 수 있는 재료도 없고 만드는 방법도 모르는 연구소에 오늘 특허권을 넘긴다고 해서 내일부터 백신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당장 각국이 백신을 제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특허뿐만 아니라 원료 조달, 제조설비 및 제조기술 이전과 같은 도움까지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에 이 정도의 의지가 있었다면 이번에 특허권 공유 정도만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첨단 바이오 관련 기술과 공급망을 공유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정된 백신 원료 공급이 저개발국가의 비효율적인 생산시설로 분산된다면 글로벌 백신 생산성과 함께 품질 저하 문제마저 발생할 것이다.

셋째, 문제의 핵심은 백신 수출 통제에 있다. 유럽연합(EU)의 미셸 의장은 미국의 아이디어가 ‘마법의 총탄(magic bullet)’이 아니며 수출만이 세계적으로 백신 보급을 촉진하는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역시나 백신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미국부터 백신 및 백신 원료의 수출 제한 철회를 선행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까지 코백스(Covax)가 121개국에 5000만 회분의 백신밖에 제공하지 못할 동안 미국은 자국민에게 다섯 배가 넘는 2억5000만 회분의 백신을 제공했다. 결국, 미국이 내놓은 해법은 당장 체면치레에 불과하고 장기적인 해결책밖에 되지 않는다. 어쩌면 각국이 생산설비를 갖추고 실제 백신 생산에 들어간 시점에는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중국은 적극적으로 백신 외교를 펼치고 있다. 최근 중국 백신의 의문시되는 효과에도 불구하고 중국 백신을 도입하고 있는 나라들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의 시노팜(Sinopharm) 백신을 긴급승인했는데 중국의 시노백(Sinovac) 백신까지 승인된다면 향후 코백스를 통해서 더욱 많은 국가에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그 어떤 국가보다 많은 2억4000만 회분의 백신을 남미와 아프리카에 있는 40여 개국에 수출했고 추가로 5억 회분의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많은 국가에서 중국 백신이 유일한 옵션이 되는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스티븐 월트(Stephen M.Walt)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며칠 전 미·중 간 패권 경쟁에서 세계는 미국이 아닌 중국의 질서를 원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외치며 일당독재마저 인정하라는 베스트팔렌적 세계관을 보이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국제관계에서도 자유, 민주, 인권 등의 가치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가치를 강조할수록 위선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릴 위험성도 높아진다.

유례없는 글로벌 팬데믹을 맞아 앞에서는 글로벌 리더십을 보일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백신을 축적하고 자국의 백신 수출마저 막는 미국이다. 이는 양면의 얼굴을 가진 위선자로 비칠 수밖에 없다. 세계가 기대하는 것은 엄목포작(掩目捕雀)의 행보가 아닌 미국의 진정한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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