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스타트업이 대기업 숙제 푸는 것, 상생 아니다

입력 2021-02-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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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산 더스윙 대표 (사진제공=더스윙)
▲김형산 더스윙 대표 (사진제공=더스윙)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유의 대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가 있다. 보통 대기업은 스타트업이 창업가의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바탕으로 사업에 성공했을 때 인수하거나 아니면 대기업이 사내 프로젝트로 사업을 시작해서 독립적인 회사로 분사한다. 그런데 한국에만 존재하는 ‘대기업 맞춤형 스타트업’은 이 둘 사이에 있는 특이한 경우로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대기업이 하고 싶고, 말이 돼 보이는 사업 모델을, 둘째, 대기업 출신이 창업하고(물론 노골적으로 그냥 대기업의 지인인 경우도 많다), 셋째, 창업하자마자 대기업의 투자를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국내 사례를 보자. 제조사 A사의 경우 대기업 맞춤형 스타트업인 K사, B사에 초기부터 지분 투자를 하고, A사가 하고 싶었던 이러한 협업 모델들을 하기 위한 MOU(양해각서)를 순차 발표한다. A사는 가장 많은 차량을 운영 중인 카셰어링 회사 C사 또는 기존 택시가맹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D사와 협업을 하지 않거나 못한다. 안 했는지 못했는지 그 내막은 모르지만, 협업이 되지 않는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비즈니스 사례가 적어도 한쪽에게 재무적으로 또는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략적 파트너를 얻기 위한 이러한 ‘맞춤형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똑똑한 전략 같아 보이는데 이게 무슨 문제가 될까? 나의 경험에 비추어 여러 문제가 보인다.

첫째, 도덕적 해이의 문제다. ‘대기업 맞춤형 스타트업’의 대표라면, 재무적 또는 전략적 검토를 소홀히 하고 대기업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수용할 확률이 높다. 이미 꽤 높은 연봉과 복지를 즐기고 있음은 물론이고, 대기업이 회사를 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스타트업이라면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사업적 위험을 지고, 그 피해는 다른 재무투자자, 고객,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직원들이 입는다.

둘째, 효율적인 자원 배분 문제다. 되지 않을 사업모델을 밀어붙인다면 쓸데없는 곳에 인재와 자본이 낭비되는 셈이고, 유망한 사업모델이더라도 최고의 인재와 팀에게 그 일이 맡겨지는 게 아니라 ‘대기업 맞춤형 스타트업’을 밀어주게 돼 그 회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게 될지 의문스러운 것이다. 동시에 독자 생존이 가능할지조차 의문시된다.

셋째, 스타트업 존재의 근간을 흔든다. 대기업 맞춤형 스타트업이 많아지면, 마치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숙제를 풀어줘야 하는 것처럼 호도되기도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이를 ‘대기업-스타트업 상생’이라며 부추기기까지 하는데 이건 완전히 스타트업의 의미를 역행하는 일이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을 혁신적으로 파괴(Disrupt)하기 위해 존재하지, 대기업의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숙제를 풀기 위한 우등생들만 지원해준다면, 이 숙제를 왜 하는지 또는 스스로 숙제를 정의하는 진짜 스타트업이 설 자리는 부족해진다.

넷째, 대기업 입장에서도 좋은 전략이 아니다. 대기업은 주로 해외 성공사례를 보고 사내 프로젝트로도 실패할 경우 사내 벤처투자 기구로 대기업이 가장 익숙한 프로필의 인물들이 창업한 회사에, ‘리스크 없이’ 찔끔 투자해서 ‘안되면 말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한다. 독립적인 스타트업들은 목숨 걸고 하는데, 이런 투자를 받은 회사들이 성과가 좋을 리 없다.

마지막으로, 스타트업 생태계의 악순환이다. 이미 국내에 성공한 스타트업이 있어도 그 회사를 인수하지 않는 대신 이와 유사한 사업을 하도록 대기업 맞춤형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투자하는 대기업의 근본적인 욕망을 들춰보면, 그 스타트업들의 가치를 무시하고 제값 주고 사고 싶어 하지 않는 후진적인 마음이 있다. 인정받아야 할 스타트업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으면 엑싯(Exit)이 어려워진다. 대기업 맞춤형 스타트업은 실력 부족으로 망하고, 선순환 구조는 발생하지 않는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상생하는 방법은 대기업이 하고 싶은 일을 스타트업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이거나 대기업의 사업모델을 파괴하는 아이디어와 사업 모델을 최선을 다해 성공시켜야 한다. 대기업은 그러한 스타트업의 성과를 무시하거나 ‘내가 하면 싸게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제값을 주고 스타트업을 인수해야 한다. 그깟 ‘택시 호출하는 앱’은 기업가치가 3조이고, 그깟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앱’은 50조 가치를 앞둔 요즘 같은 시대에,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면 잘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대기업이 많다는 건 가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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