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생 김유진이 사는 법] “결혼도 학원이 필요한 현실…꼭 할 필요 있나요?”

입력 2021-01-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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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역전의 기회라고?”
“비용 부담에 엄두도 안나”
“나 혼자 살기도 바쁘다”

지역, 학교, 직업, 자산, 부모님 노후…. 결혼 하나를 결정하는 데 따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옛날처럼 부모님이 점찍어둔 신붓감이 있었으면 차라리 쉬웠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결혼에 지레 겁먹어 ‘나 결혼 안 해’를 외치는 비혼주의자들도 속출한다. “좋은 사람 만나면 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인식이 90년대생 결혼 가치관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흔히 ‘결혼은 현실’이라는 표현을 쓴다. 기성세대 부모 밑에서 자란 90년생들은 결혼이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현실 문제라는 것에 순응하기도 한다. “너무 없이 시작하면 나중에도 힘들다”, “기반은 다져놓고 시작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지겹게 들어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계층 간의 이동은 쉽지 않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결혼도 스펙… “배우자에 따라 인생 등급 달라져”

김지은(가명, 29) 씨는 어린 나이임에도 지난해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했다. 부모님에게 떠밀리듯 가입했지만, 지은 씨도 의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큰 어려움 없이 자라온 지은 씨도 비슷한 가정환경의 남편감을 원했다. 시작점에서부터 격차가 벌어지는 건 지은 씨도 원하지 않았다. 지은 씨는 “어차피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조건에 맞는 상대만 만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소개팅을 부탁해야 하는 수고도 민망하고 번거로웠다.

하지만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먼저 가입상담을 신청하기엔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부족한가 싶더라고요. 그래도 용기를 낸 건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기 싫었기 때문이에요. 용기를 내서 업체에 방문해 봤어요. 처음에는 상담만 해보려 했는데, 결혼은 현실이라는 결혼정보업체 매니저의 적나라한 조언이 쐐기를 박았죠.” 지은 씨는 업체에서 온 문자를 보여줬다.

“결혼은 인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입니다. 대입 수능, 취업시험 등 큰 관문을 통과하는 시험들과 비교할 수 있을 거예요. 특히 여자에겐 더더욱 인생이 달라지는 큰 기회인 거죠. 우리가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명문학원에 다니듯,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훨씬 더 중요한 것이지요. 더는 고민하지 마시고 ‘결혼 학원’ 00(업체명)의 상담 꼭 받아보세요.”

당시 업체는 올해 30세가 되는 게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지은 씨를 독촉했다. “고객님은 지금 반드시 등록하셔야 해요. 30대로 접어들면 금액은 더 비싸져요. 여자는 나이가 경쟁력이라는 거 모르세요?” 결혼정보회사 매니저의 종용에 마음이 급해진 지은 씨는 3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급했다. 이왕이면 상위클래스로 가입하라는 매니저의 권유에 응해 가격은 높아졌지만, 비용은 부모님께서 부담해 주시기로 했다.

하지만 지은 씨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결혼도 제 가치관에 맞춰 선택해야 하는데, 정해 놓은 결혼 가치관이 없었어요. 여기저기서 해주는 조언들이 곧 저의 가치관이 돼 버린 거죠.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조건을 중시했어요. 특히 사회생활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어요. 아직도 우리 사회는 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다만 결혼도 학원이 필요하다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죠.”

“혼자 살 돈도 없는데… 무슨 결혼이에요”

이마저도 돈 있는 사람들의 얘기일 뿐이다.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자신을 비혼주의자라고 소개한 이성연(가명, 28) 씨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못 박았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성연 씨는 “주변에도 보면 많지는 않지만 결혼 소식이 꾸준히 들려온다”며 “당연한 얘기지만 어느 정도 경제적 여건이 되는 사람들만 결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을 안 하기로 마음먹는 데 있어서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며 “지금이야 혼자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 당연히 경제적 여유도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원래부터도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기도 했지만 이런 이유로 완전히 생각도 안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웨딩컨설팅업체 듀오웨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우리나라 신혼부부의 결혼비용은 평균 1억5332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주거비용 비중이 가장 컸다. 주택 1억800만 원, 예식홀 1011만 원, 웨딩패키지(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235만 원 순이다. “일을 쉬지 않고 해도 이것저것 나가는 돈이 많아요. 혼자 사는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신혼집이나 결혼 준비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돈이 안 모이니까 결혼할 생각조차 안 들어요. 땅 파서 결혼할 수도 없지 않나요.”

1인 가구로 5년째 살고 있는 박진언(가명, 31) 씨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어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연애를 안 해도 혼자 할 수 있는 놀거리가 많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진언 씨는 평일에는 일에 허덕이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밴드 활동을 한다.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고, 여행을 다니면 남는 여가 시간이 없을 정도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서도 무언가를 하기에 편한 세상이 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내가 버는 만큼 쓰는 것에도 만족해요. 챙겨야 할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부담스럽고, 개인주의 성향이 있어서 남의 가족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부담스러워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동거도 생각하고 있어요. 서로 합의만 된다면 동거가 결혼보다 더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진언 씨와 같은 1인 가구 급증 현상은 통계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7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성인 4674명을 상대로 ‘1인 가구 현황’을 조사한 결과나 혼인 통계치 등은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잡코리아 조사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40.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4명은 ‘1인 가구’인 셈이다. 연령별 1인 가구 비율은 ‘20대’ 37.0%, ‘30대’ 48.1%, ‘40대 이상’ 39.0%로 파악됐다. 소위 ‘결혼적령기’로 불리는 30대에서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셈이다.

결혼보다 두려운 건 주변의 시선

결혼에 있어 이들을 괴롭히는 건 결혼식 비용도 결혼정보회사 금액도 아니었다. 주변의 시선이었다. 지은 씨는 주변에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나만 그런가’ 싶어 맞선에 나온 상대한테도 물어봤는데, 상대 또한 알리지 않고 나온다고 했다. “그런 방법까지 동원해 결혼해야 하나”라는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은 씨는 “소개팅을 주선 받을 때도 조건을 물어보면 ‘취집’이 목표냐는 식의 비아냥을 자주 듣곤 했다”며 “조건을 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조건을 본다고 손가락질받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비혼주의자 진언 씨도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비혼주의라고 당당하게 밝히지만, 주변의 관심은 항상 뜨거웠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부터 ‘네가 언제까지 그러나 보자’는 회사 선배의 비꼬는 말투까지. 진언 씨의 앞날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조언까지 들어야만 했다. 진언 씨는 “비혼주의자를 선언한 이후부터 저를 특이한 사람 취급하는 게 불편했다”며 “아예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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