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특별기고] 격변의 시대 앞으로 1년

입력 2020-10-06 06:00 수정 2020-10-0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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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9월 24일 서울 관악구 중민재단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9월 24일 서울 관악구 중민재단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위험사회의 현주소

앞으로의 1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1년 뒤의 모습은 어떠할까? 우리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과거의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것으로 가정하고 희망한다. 그러나 미래는 과거의 재현이 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와 있다.

문제의 핵심은 코로나19 감염병이 아니다. 이를 치유하는 백신도 아니다. 언젠가 질병은 극복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야기된 사회체제의 변화, 특히 정치적 환경과 체질의 변화가 코로나19 이후의 낙관을 불허한다.

우리는 시민이 누려야 할 일상생활의 자유, 얼굴을 마주치는 공동체적 삶, 취향에 따른 선택의 권리, 그리고 인권을 갈망하지만 이것이 코로나 시대에 위협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쉽게 복원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이유는 비상대권으로 최대한 공포심을 불어넣는 통치유형이 세계 도처에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매우 특별하다. 법 앞의 평등을 요구하는 ‘법치’보다 긴급명령에 의존하는 ‘통치’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으로 높다. 지구상 어느 민주주의 국가보다 일사불란한 통치를 떠받드는 제도적 장치가 가장 완벽하게 구비된 곳이 한국이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장외 세력이 막강하게 조직화되었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보자면 총체적인 탈바꿈 시대가 된 것 같다.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구조적 요인을 찍어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지구적 위험사회라고 하겠다.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는 이미 빈부격차의 심화로 한계를 드러냈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더욱 비틀거리면서, 인력과 물류 이동이 멈추면서 세계적 경기침체와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서구 민주주의 국가조차도 우익 포퓰리즘 정치가 만연하면서 적대와 증오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파국적인 재난들이 이어 지고 있다.

한국사회 내부를 보자면 고속성장의 의도치 않았던 부산물로서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다양한 대형 사고의 지뢰밭이 도처에 깔려 있다. 이것이 코로나19를 최첨단에 둔 위험사회의 현주소이다.

K-방역의 양면

그러면 이제 차근차근 코로나19 방역정책(K-방역)의 양면을 살펴보자. 어떤 위험과 함께 희망이 성장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한국이 세계의 모범이라는 서구언론의 보도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9월 16일, 미국의 외교안보 언론매체인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한국의 방역과 경제 성과를 호평했다.

“미국이 완강하게 지속되는 세계 유행병과 싸우고 지독하게 느린 경제회복과 씨름하는 사이, 한국은 두 전선에서 승리하는 비법을 찾은 것 같다.” (Lasen, 2020)

그리고는 여러 통계자료를 제시했다. 요지인 즉, 한국이 보건과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고무적인 평가다.

언론만이 아니라 세계시민도 같은 의견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 필자가 수행했던 세계 30대 도시 시민을 상대로 한 방대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6월 중순 현재, 한국은 모든 도시 시민들로부터 방역정책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국제비교의 객관적 방법으로 측정한 결과 한국이 최상위에 속했다.(한상진, 2020c)

이 국제적 평가는 한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반길 일이다. 특히 화려한 약속으로 집권했으나 3년간 별로 내세울 실적이 없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K-방역은 꼭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클 것이다.

그렇지만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 성공의 의도치 않았던 부작용을 깊게 헤아리는 것이 책임 있는 정부의 모습이다. 가장 우려할 현상은 한국 시민들이 다른 어느 시민보다 강한 국가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정부 중심으로 힘을 모아 코로나19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긴급명령에 의존하는 과거 독재 시대의 ‘통치’를 법치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대만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이것은 특히 진보적 성향의 시민들 사이에서 현저히 높다.(한상진, 2020a) 이것은 통상 진보가 권위주의 국가의 권력에 저항하여 시민의 권리를 옹호했던 전통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현상이다. 진보의 엄청난 탈바꿈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는 왜 진보를 표방하는 조직화된 시민들이 국가주의 이념으로 똘똘 뭉쳐 문재인 정부의 정책, 특히 K-방역을 지지하고 이를 가로막는 집단을 성토·응징하는 장외활동에 열중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식을 갖춘 시민은 어떤 입장을 지녀야 할까? K-방역의 성공은 누구나 쌍수로 환영할 일이다. 동시에 국가중심 방법론에 내재한 잠재적 독재의 경향, 특히 시민 위에 작동하는 감시사회의 출현에 경각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해외언론을 소개하겠다.

2020년 4월 6일 프랑스 레제코(Les Echos) 경제신문에 보도된 “코로나19와 확진자 동선추적: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지 말라”는 제목의 칼럼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인 비르지니 프라델 (Pradel, 2020) 은 K-방역을 개인자유의 파괴로 비판했다. 그는 K-방역의 성공을 인정하면서도 프랑스는 한국의 확진자 추적 시스템과 정보 공개 정책을 결코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논했다.

“중국은 몇 년 전부터 디지털 감시 체계와 야만적인 시민 억압을 실시하고 있는데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두 번째로 뛰어난 시민감시 챔피언으로서 각종의 정보를 활용하는바, 수백만 한국인은 추적-보고 테크닉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성장하여 단순히 담배꽁초를 길에 버리는 행위부터 불륜, 부패에 이르기까지 동료 시민의 규칙위반을 보고하고 보상을 받는다.”

강한 펀치를 한 방 먹은 느낌이다. 물론 이 기고문은 한국과 중국의 차이, 한국 시민사회의 활력에 대한 무지와 함께 서구 개인자유 전통에 대한 낭만적 환상,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인종적 차별을 놀랍도록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신체감시의 기술로 근대성을 조명했던 미셸 푸코의 시각이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할 때, 디지털 정보 기술을 K-방역에 최대한 활용하는 한국 정부의 통치전략에서 그가 ‘초감시 사회’의 출현을 보고 위험을 경고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최근 상황이 심상치 않다. 9월 16일 자, 중앙일보 칼럼 (전수진, 2020)은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이 보이면 신고하라는 방송을 주제로 해서 이 문제를 짚었다.

9월 15일 현재 한 포털 사이트엔 ‘초딩 6’이라는 사용자가 “마스크 안 쓴 사람 찍어서 신고하면 3만 원 준다던데 맞아요?”라는 글을 올렸다. 거리두기 2.5단계가 한창이던 때에 단골 식당 사장은 “상가 점포 주인들끼리 서로 감시하느라 난리”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모 구청에 근무하는 지인은 “신고 포상금 받으려면 사진 어디로 보내냐”는 전화가 폭주해 업무를 못 볼 지경이란다. […] 감시가 하나의 경제활동으로 정착하면서 한국은 상호 감시가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되는 사회로 진화 중이다.

한국사회의 미래

그러면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시민이 시민을 감시하는 사회를 누가 원하겠는가? 그러나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다. 권력자의 악한 의도 때문이 아니다.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따라 누구도 원치 않는 괴물이 등장할 수 있다.

한 보기로, 권력을 독점한 집단은 시민과 협치하는 어려운 길보다 시민에게 명령하는 손쉬운 통치 방식을 선호한다. 사회적 저항 없이 뜻을 관철할 수 있는 코로나 정국의 기회와 이미 확보된 입법, 사법, 행정의 제도적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장외 세력은 개혁의 명분으로 디지털 여론을 이끈다. 이런 환경의 압력에 시민들도 적응하면서 누구도 원치 않는 초감시 사회가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외 동원문화가 현재보다 더 활성화된다면, 대중독재 초감시 사회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괴물을 막을 수 있는가? 희망의 출발점은 사고방식의 초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지만 방역의 주체는 결국 시민이다. K-방역의 성공도 시민의 자발적 협력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시민 쪽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의 귀중한 잠재력이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마음의 공동체다. 세계 30대 도시 시민의식조사를 통해 얻은 놀라운 발견은 한국 시민이 마스크 착용을 포함하여 정부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이유는 자신의 건강에 못하지 않게, 혹은 그보다 더 강하게, 가족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강한 유대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공동체 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한상진, 2020b)

이것은 곧 시민이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말로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능동적인 시민주체로 성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귀중한 발전의 잠재력이다. 마음의 공동체는 매우 강하지만 소통의 공동체는 더욱 발전돼야 할 과제다. 이런 눈으로 우리는 코로나19 사회협치 모델을 구성할 수 있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가능하다. 그러면 그 힘으로 독재의 길을 막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는 위기면서 기회다. 우리의 뛰어난 정보기술, 의료제도, 유능한 정부가 시민참여적 공동체 문화와 결합함으로써 민주적 코로나-협치의 길을 선도할 수도 있다. 서구가 하기 힘든 일을 우리는 할 수 있다. 이런 희망의 눈으로 향후 1년의 가능성을 논의해보자.

※참고문헌

한상진. 2020a. “진보정권의 미래가 불안한 이유” 헌정, 9월호, 34-37.
한상진. 2020b. “코로나19 이후의 한국의 미래” 이영한 외, 포스트 코로나 대한민국, 한울.(출판 중)
한상진. 2020c. “코로나19 방역과 국가이미지 탈바꿈” 이영한 외, 책.
전수진. 2020. “감시 권하는 사회” 중앙일보 9월 16일.
Pradel, Virginie. 2020. “Covid-19 et tracage: ne sacrifions pas nos libertes individualles!” Les Echos, April 6.
Larsen. M.S. 2020. “COVID-19 has crushed everybody’s economy-except for South Korea’s” Foreign Policy, September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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