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삼성 지배구조 허물기, 무얼 위한 건가

입력 2020-09-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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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공정경제’를 내세운 거대 여당과 정부의 입법 폭주다. 대기업 규제 일색이다. 경제계가 한목소리로 수십 차례나 부당성을 호소했던 ‘3법’(공정거래법·상법·금융그룹감독법 제·개정안)은 국무회의까지 통과했다. 21대 국회의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3개월간 여당이 쏟아낸 반(反)시장·반기업 의원입법안만 200개가 넘는다. 코로나19 위기와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에도 힘겨운 기업들의 위기감 절박하다.

여당이 밀어붙이는 법 가운데 보험업법 개정안이 있다. 현행 법은 보험사가 다른 회사 주식·채권을 보유할 때,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총자산의 3%를 넘지 못하게 한다. 개정안은 여기의 취득원가를 시장가격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주식의 현재 가치를 자산운용에 반영하는 게 공정하다는 논리, 보험사가 특정 기업에 몰아서 투자했다가 부실로 고객이 피해 보는 일을 막자는 명분이다. 좋은 의도로 포장되기는 했는데 치명적인 독(毒)이 묻어 있다.

이 법에 걸리는 보험사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두 곳으로 특정된다.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가 표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 해체’ 시나리오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 주식은 국민연금이 11.1%, 삼성생명 8.5%, 삼성물산 5.0%, 이건희 회장 4.2%, 삼성화재 1.5%, 이재용 부회장이 0.7%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의 핵심 고리가 삼성물산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물산의 17.5% 대주주이고, 물산은 생명의 19.3% 주주다. 요컨대 이재용은 물산→생명→전자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를 통해 20% 남짓한 지분으로 전자의 경영권을 행사한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 틀에서 삼성생명을 뽑아내자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전자의 설립 초기인 1980년 주당 1000원 정도 가격으로 지분을 인수했다. 원가기준으로 현재 총자산의 0.18% 수준이다. 이걸 시세로 바꾸면 얘기가 다르다. 전자의 비약적 성장으로 주식가치는 50배 이상 뛰었다. 지분가치는 삼성생명 자산의 10%에 육박한다.

결국 삼성생명의 자산 3%를 초과하는 전자 지분을 대량으로 처분해야 한다. 삼성화재 지분을 합치면 매각 규모는 20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걸 누가 살 수 있는가? 삼성이 경영권을 지키려면 물산 등 계열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팔거나 해서 인수해야 하지만 지주회사법 등의 제약으로 현실성이 없다. 외국인의 먹잇감이 되는 경우는 최악이다. 지금도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헤지펀드인 블랙록의 5.0%를 포함해 56% 수준이다. 막대한 배당금 지출에 따른 국부유출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들이 연합해 경영권을 위협해도 방어가 불가능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집요한 공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했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가 될 공산도 크다. 정부가 단 한 주의 주식도 갖지 않는데 최고경영자(CEO) 인사 등이 정권 입맛대로 좌우되는 KT나 포스코 같은 주인 없는 기업으로 만드는 시나리오 그대로다. 보험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한국의 최우량 기업인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는 것 말고 보험사의 더 나은 자산운용이 또 어디에 있나.

이게 보험업법 개정안의 실체다. 삼성 지배구조를 허물기 위한 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9대,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내놓았다가 무산된 후 이번에 반드시 관철할 기세다. 막을 방법이 이번에는 없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수출의 20% 이상을 홀로 감당한다. 제조업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떠맡고, 주식시장 시가총액 비중은 30%대다. 대한민국 법인세의 20% 정도를 책임지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이 이어지지만 정답은 없다. 더 나은 기업성과를 목표로 한다면, 좋은 경영실적을 내는 것이 최선의 지배구조다. 어떤 지배구조를 갖든 기업이 미래를 위해 자율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영역이다. 국가권력이 하나의 잣대로, 편향된 이념적 접근으로 강제하는 건 정말 위험하다. 삼성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일궈낸 경이적 성공이 지금 오히려 족쇄이자 저주(咀呪)의 대상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이 자해(自害)행위는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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