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숲속의 아름다운 폭력배

입력 2020-07-0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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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안전 안내 문자를 받는 요즘, 실내 활동이 제한을 많이 받다 보니 상대적으로 야외를 찾는 활동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확보할 수 있고 공기도 좋아 감염 우려가 적다는 생각으로 숲과 산을 찾은 등산객이 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숲을 걷다 보면 눈에 띄게 다른 나무에 비해 키가 크고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나무를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숲을 전문적으로 가꾸어 자원적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산림자원학 분야에서는 이런 나무를 전문용어로 ‘폭목(暴木)’이라고 부릅니다. 나뭇가지와 잎이 모여 있는 수관이 다른 나무들의 수관층보다 위로 자라고 넓게 발달하여 이웃한 나무들의 생장에 방해가 되는 나무라고 정의합니다. 쉽게 말해서, 나무가 전체가 아주 크고 넓어 다른 나무들보다 위로 솟아나고 제 혼자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를 말합니다. 이 ‘폭목’은 그늘을 심하게 드리워 그 아래에서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폭목’은 숲에서 자기만 살려고 다른 나무들을 억누르는 ‘폭력’을 저지르는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폭목’의 ‘폭’ 자가 ‘사나울 폭’을 쓰니 아주 잘 표현한 용어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 ‘숲의 폭력배’들은 가끔 벌을 받기도 합니다. 번개가 쳐서 벼락이 떨어질 때, 이 ‘폭목’들은 다른 나무들에 비해 키도 크고 면적도 넓다 보니 벼락을 잘 맞게 되고 피해를 입어 나무가 줄어들거나 죽기도 합니다. 자연이 조화와 균형을 찾는 방법은 정말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전문용어인 ‘폭목’을 영어로는 ‘wolf tree’ 즉 ‘늑대 나무’라고 합니다. 이 단어를 찾아보면 재미있게도 전문용어로서의 ‘폭목’과는 다른 의미의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영국에서 새로이 삶의 터전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이주민들이 가축 방목을 위한 목초지를 만들기 위해 숲을 개간하던 때, 이따금 어떤 나무들이 의도적으로 또는 우연히 남겨지곤 했습니다. 빛과 공간에 대한 경쟁이 없어진 이 나무들은 위로 자라는 것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가지를 옆으로 펼쳐 넓은 공간을 차지해 나가며 외로운 ‘늑대 나무’ 또는 ‘폭목’으로 자랐습니다. 크고 넓게 자란 ‘폭목’들은 들판에서 사람과 동물에게 그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늑대와 같은 포식자까지도 숨겨주었습니다. 산림자원학에서의 폭력배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떤 지역에서 홀로 남겨진 고독한 나무이기 때문에 이 ‘늑대 나무’는 종종 번개에 맞거나 달리 갈 곳이 없는 해충에 시달렸고, 그 결과 이 나무들은 온통 상처투성이로 울퉁불퉁한 외모를 갖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목초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이 ‘늑대 나무’ 주변에는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며 천천히 숲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나무들이 왕성하게 자라서 높이가 비슷해지면서 햇빛과 공간을 제한하기 때문에 ‘늑대 나무’는 상대적으로 쇠약해지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산림 동물, 특히 새들을 위한 충분한 생활공간을 제공하면서 산림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역할을 다합니다.

숲 관리에서 ‘폭목’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영양분과 햇빛을 독점함으로써 그 아래에 다른 나무와 풀이 자라기 어렵게 합니다. 오래된 나무는 뒤틀리고 옹이가 많아져 목재도 쓸모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폭목’들의 울퉁불퉁했던 상처는 치유 과정을 거쳐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변하고 동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생태학적 가치도 높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에도 특히 ‘폭목’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폭목’인지 ‘늑대 나무’인지 분명히 알 수 없기도 합니다. 이 ‘폭목’들이 아름다워지고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품어주어 ‘늑대 나무’로 함께 사는 지혜를 찾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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