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미 그 계획은 시작됐다."
음모론이 아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중국의 자동차 시장과 관련해 보도한 내용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비호 아래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의 지배적 위상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중국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간 340억 달러(약 38조 원)가 넘는 돈을 투자했으며 올해 들어서는 13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당국이 나서 자동차 산업에 대한 중장기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중국의 이같은 움직임이 노골화되면서 중국에 진출한 국내 자동차 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 정치적 문제를 빌미로 삼아 중국 시장내 한국 자동차 업체의 입지 축소를 시도하고 있다.
◇中서 고전 중인 현대차, 현지 합자 업체와 갈등 = 최근 현대자동차가 중국 현지 합자법인인 '베이징현대차'를 함께 세운 베이징기차공업투자유한공사(이하 베이징기차)와 갈등을 일으켰다.
베이징현대의 자금을 담당하고 있는 베이징기차가 납품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으면서 협력사가 납품을 거부, 현대차 공장 4곳의 가동이 중단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베이징기차는 베이징현대의 판매량이 대폭 줄자 목표 이익을 맞추기 위해 단가 인하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 않자 납품대금을 지불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협의 끝에 공장은 다시 가동을 시작했지만 중국 사드 보복으로 현대차의 중국 판매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의 불씨는 언제든지 되살아 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베이징기차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중국 현지 언론에 합자관계 청산까지 거론했다.
업계에서는 베이징기차의 합자관계 종료 언급은 단순 '협박용'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합자관계 종료될 경우 현대차 뿐만 아니라 베이징기차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베이징기차가 사드 사태로 인해 입지가 축소된 현대차에 중국 판매 감소의 책임을 떠넘기고 향후 협상 주도권까지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베이징기차는 베이징현대의 거래선 교체와 함께 최대 30%의 부품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中 자동차 시장 변화에도 '주목'…"자동차굴기, 본격 가동"= 이와 함께 중국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중국 정부는 올해 4월 오는 2020년까지 1000억 위안 규모의 공룡급 자동차 부품사 육성, 로컬 자동차와 부품회사를 2025년까지 글로벌 TOP 10에 진입시키는 등 목표를 제시한 중장기 발전규획을 내놓았다.
규모는 크지만 기술력이 부족한 자국 자동차 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또한 중국은 점진적으로 합작기업의 지분제한을 완화한다고 밝혔다. 당국이 자동차 합작규제 완화를 적시한 것은 처음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동차 부품사 육성과 ▲합작기업 지분제한 완화다. 특히 합작기업의 지분제한 완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중국 시장에서는 완성차의 합자 회사 설립 공식이 깨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시장 환기술(以市場 換技術)' 정책, 즉 "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교환한다’는 전략적 육성책에 힘입어 충분한 기술력을 습득한 중국 로컬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자생력을 갖춘 상황이다.
현대차와 합자회사(JV)를 설립했던 베이징기차의 경우 JV 설립 당시 2002년에만 하더라도 자체 승용차 생산 능력이 없었으나 2016년에는 141만대의 자체 브랜드 승용차를 판매, 북경현대(110만 대)의 판매량을 뛰어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국 현지 업체가 해외 업체와의 JV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자동차 부품사 육성이다. 중국 자동차 산업은 규모는 크게 확대됐지만 핵심 부품기술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품 영역에서의 기술 이전이 또 다시 필요하게 된다. 이에 부품사의 경우 JV설립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측의 현지화 압력 등으로 인해 JV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이 사드로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드를 빌미로 국내 기업들을 쥐고 흔들고 있다"면서 "베이징기차가 비용 절감을 위해 납품사를 중국 현지 기업으로 교체를 요구했는데 최근 베이징기차의 부품 자회사인 해납천이 부품 영역에서 기술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만 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