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죽여 마땅한 사람들

입력 2017-05-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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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대학원생

혹시 살면서 한번쯤 “저 사람은 세상에 해악이야”라고 말하거나,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를 보며 “저런 사람은 사형시켜야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한다.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던 테드는 라운지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에게 배우자의 바람을 목격한 사실을 말하며 농담처럼 아내인 미란다를 죽이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여자는 그의 농담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진짜 아내를 죽이겠다면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 행위를 단지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세상을 대신해 먼저 치우는 것뿐 - 사람들은 생명이 존엄하다고 호들갑 떨지만 이 세상에는 생명이 너무 많아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보다 조금 일찍 추려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뭔가요? - 이라고 정의한다. 테드는 여자의 말에 아내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내인 미란다 역시 남편인 테드를 죽이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책은 이것을 1인칭 시점을 통해 긴장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

이야기 속 여자의 이름은 ‘릴리’. 그녀가 처음 살인을 저지른 건 십대시절, 부모님 집의 식객이던 화가 쳇을 죽인 일이다. 그때 그녀가 쳇을 죽인 것은, ‘이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쳇은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나를 강간하고 죽이기에 적합한 때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릴리는 강간ㆍ살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발생했다. 바로 작년 한 술집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모르는 여자를 찔러 죽인 사건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비슷한 사건 같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범인이 경찰 조사에서 ‘지하철에서 어깨를 치고 가는데 보니까 다 여성이었다, 지하철에서 여성들이 내가 지각하게 하려고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앞을 가로 막는다, 등 사소하지만 기분 나쁜 일들은 다 참아왔는데, 직업적인 부분에서까지 음해를 하니 더는 못 참겠더라. 이러다가는 내가 죽을 거 같아서 먼저 죽여야겠다.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사실 주인공이 사이코패스 같은데도, 한편으론 읽으면서 어느새 그녀가 잡힐까 걱정하게 될 만큼 매력적으로 주인공을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생각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쳇은 릴리를 강간하고 죽이려고 했던 걸까? 또 릴리가 죽여 마땅하다고 생각해 죽인 사람들은 정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책은 1인칭 시점이다. 자 이제, 앞서 이야기한 실제 사건 속 가해자와 릴리의 첫 범행 동기가 겹쳐 보이지는 않는가?

세상에는 정말로 ‘죽어 마땅한’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판단은 누가할까? 소설 속 릴리는 사람들이 보통 막연히 생각만 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겨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한편, 이것이 실제 일어났을 때 얼마나 무서운지를 느끼게도 해준다. 설마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요즘,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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