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부

입력 2007-12-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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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장훈이 누군지 필자는 모른다. 그가 부른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고 TV를 통해서 시청한 적도 없다. 그러나 얼마 전 지상을 통해 그의 아름다운 천사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보증금 5천만원 짜리 월셋집에 살면서 30억원이나 되는 큰 돈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부해왔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자신의 장래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서 그런 기부를 계속했다. 말은 쉽지만 그의 기부는 누구도 하기 힘든 아름다운 행위다. 그는 연예계의 천사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는다.

김장훈의 이 아름다운 기부행위는 필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가수라 하면 노래불러서 인기 얻고 돈 많이 버는데만 온 힘을 쏟는 그런 풍토에서 살아가는 연예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김장훈은 자신의 전재산이나 다름 없는 거액을 아낌없이 이웃에게 희사했고, 그것도 9년이나 되는 장기간 동안 그렇게 했다. 일반 시민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탈(?)의 사건이다. 세상에는 어떤 환경, 어떤 조건에서 살아가더라도 아름다운 마음만 있으면 언제나 아름다운 행위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 사회 지도층도 아닌 가수 김장훈이 행한 기부행위는 아무리 찬사를 들어도 모자란다.

심장전문의 송명근 교수도 2백억 원이나 되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키로 한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송교수는 그가 개발한 심장판막 성형수술 의료기기 수익으로 그만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욕심이 생길까봐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고, 아들 딸에게는 결혼할 때 3억원씩만 주기로 했다고 한다. 송교수의 기부도 범인으로서는 행하기 힘든 선행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최근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신의 재산 3백53억 여원 중 주택(40억원)을 뺀 나머지 3백여억원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고, 살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용기를 주는 일에 조그마한 힘이 되고 싶다”는 말로 기부 동기를 밝혔다.

지난 주말 필자는 친구들을 만났다. 화제의 초점이 자연스레 대선에 집중됐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아내가 식당에서 식사하는 중 옆 식탁에서 밥 먹고 있던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명박이 재산을 내놓겠다고 하는데 지가 대통령하면 재임 중에 더 해먹을 거 아냐. 그러니 그거 다 쇼야....”

유권자의 상당수가 아직도 BBK에 대한 검찰 발표를 못미더워하는 모양이다. 이후보는 그러나 BBK의혹이 종결된 만큼 자신의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도덕성’ 논란을 불식시키고, 평소에 갖고 있던 사회 기부활동을 실행할 것임을 차제에 밝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의 진정성이다. 식당의 젊은이들도 이후보의 진정성을 믿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한 것 같다.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지금 이 상황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공식 발표한 기부행위가 한낱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80년대 이후 민선으로 당선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지금까지 거액의 개인재산을 사회에 기부 또는 헌납한 사람이 없다. 오히려 재임 중에 재산을 엄청나게 불려놓고도 안 그런 척하고 시침떼고 있는 전직 대통령들이 수두룩하다. 현직 대통령은 재임 중에 받은 급료로 펀드를 운용해서 재산을 적지 않게 불리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적어도 지금까지 재임 중에 의혹의 재산을 불린 전직 대통령들보다는 훨씬 청렴(?)하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 대통령이 대통령되기 이전이나 대통령이 된 지금이나 자신의 개인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썼다는 소식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돈 많은 전현직 대통령들이 사회에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내놓는 기부행위에는 이상하게도 매우 인색하다. 이래서는 그들이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행해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쥬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물론 지도층의 덕목이 반드시 재산을 기부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몇천억원 씩 가진 그들이 돈 없는 척 하면서 인색한 스크리지 영감처럼 구두쇠 역을 하고 있는 건 볼썽사납다.

그에 비하면 이후보는 훨씬 나은 편이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급료 전액을 불우 이웃돕기에 써왔다고 한다. 최근 방송 토론회에서는 액수를 밝히진 않았지만, 사회 기부 행위를 매년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국가지도자들의 인색한 기부행위와 비교하면 그의 기부행위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후보의 진정성은 재산 기부와 관련한 그의 공언이 얼마나 잘 지켜지냐에 달려있다. 그의 공언이 여느 지도자들처럼 어영부영 용두사미가 될지, 아니면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실현될지는 우리가 잘 지켜볼 일이다. 늦긴 했지만 국가지도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이후보부터라도 첫발을 내디뎌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길 바란다. 선거철만 되면 난무하는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되는 전철을 또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제2의 ‘브루투스’가 나타나는 걸 바라지 않는다. 플라톤이 바라던 이데아적인 철인(哲人)의 출현이 아쉽다.

최재완 편집인 [] 2007/12/10 12: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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