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지금] 독일, 트럼프에 공동가치 존중을 촉구하다

입력 2016-11-16 10:47 수정 2018-02-0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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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 세르비아 대사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알려진 직후 요아힘 가우크(Joachim Gauck) 독일 대통령은 “오늘 11월 9일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 날”이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는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앞으로 국제 정세에 어떠한 파장을 가져올 것인지를 함축하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에게 ‘운명의 날’로 알려진 11월 9일은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 제국’(프로이센)이 붕괴되고 ‘바이마르 공화국’ 선포 △1923년 히틀러가 뮌헨에서 바이에른 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날(성공하지 못했으나 그의 이름이 독일 전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감옥에 갇힌 히틀러는 ‘나의 투쟁’(Mein Kampf)을 기술. 1933년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11월 9일을 기념일로 제정했다) △1938년 히틀러가 유대인 상점과 거주 지역에 방화와 폭력 등 유대인 탄압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날(‘Reichskristallnacht’, ‘Novemberpogrome’) △1989년 동독 시민 봉기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날(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1월 9일을 국경일로 제정코자 했으나, 히틀러와 연관된, 특히 유대인 공식 탄압 시작날인 1938.11.9 사건을 이유로, 동·서독 통일 선포 날인 10월 3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독일은 미국 국민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새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낸다. 신임 미국 대통령은 유럽과 미국 간 협력관계의 전통을 이어가기 바라며, 이러한 협력관계는 양측의 관심사항에 근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또 “앞으로 유럽은 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며 인류 보편적 가치의 이해와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와 관련해 11월 9일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 선거에 의해 선출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축하한다. 미국은 독일에 유럽연합 다음으로 가장 긴밀한 협력국가이다. 강력한 경제력, 군사적 능력, 문화적 전파력을 가진 거대한 미국을 이끌어갈 정치가는 전 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책임이 있다. 미국 국민은 이러한 책임을 도널드 트럼프에게 위임했다. 독일과 미국은 공동의 가치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양국의 공동 가치는 민주주의, 자유, 법치주의 존중과 출신, 피부색, 종교, 성별, 성적 그리고 정치적 성향과 무관한 인권존중이다. 이러한 공동 가치의 존중을 전제로 나는 미국의 차기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양국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제안한다….”

메르켈 총리의 성명은 독일의 동맹국 미국의 대통령 당선인에게 양국 간 협력관계의 조건을 제시한 매우 이례적인 내용이다. 독일 정부가 트럼프의 당선을 그만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대단히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국제무대에서 독일의 위상을 대변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유럽의 재정위기, 우크라이나 사태, 중동 문제 등 수많은 국제적 문제 해결에서 미국은 독일의 협력이 필요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진정으로 미국의 ‘고립주의’를 추진하지 않는다면 메르켈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성명 발표 다음 날 트럼프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했으며, 늦어도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최될 G-20 정상회담에서 만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후보 시절 ‘증오설교자’(Hassprediger)로 호칭했던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 독일 외무장관은 11월 10일 슈피겔지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알람 종을 울리는 정치적 지각 변동”이라고 했다. 선거기간 트럼프가 핵무기 사용 문제, 시리아 정세, NATO 동맹관계 등 주요 국제 문제에 대해 언급했던 내용은 매우 염려스럽고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의 대외 정책은 예측 불가하지만, 독일은 정치적 이성과 대외적 신뢰관계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Making America great again’과 세계적 문제에서 손을 떼겠다는 미국의 ‘고립주의’ 추진은 양립될 수 없는 이율배반적 논리라고 했다. 또한 정치가가 복잡한 국제 정세에 대해 간단한 해결책으로 답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이며, 이러한 포퓰리즘의 세계적인 확산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차기 독일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은, 앞으로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선거 기간에 언급했던 것과 같은 비현실적인 정책을 추진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음식을 먹을 때는 끓일 때처럼 뜨겁게 먹지 않는다”(Es wird nichts so heiss gegessen, wie es gekocht wird.)는 독일 속담을 언급했다. 11월 14일 독일 양대 정당인 사민당과 기민/기사 연합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의 후임으로 슈타인마이어를 공동후보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슈타인마이어는 2017년 2월 12일 실시될 독일 대통령 선출 대의원단 선거에서 차기 대통령에 추대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정치가들은 현재 여러 방면에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는 유럽연합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유럽이 당면하고 있는 주요 정치 문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격적 영향력 확장 정책,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독재화 및 푸틴 대통령과의 협력 강화 등 탈서방 정책화, 영국의 ‘브렉시트’ 추진 문제, 극우파가 이미 집권하고 있는 폴란드와 헝가리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 확장되고 있는 선동적인 포퓰리즘 문제 등이다.

융커(Jean-Claude Juncker)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관련, “미국은 더 이상 유럽의 안보를 보장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 유럽 스스로 유럽의 안보를 지켜야 할 것”이라며 유럽 방어를 위한 ‘유럽연합 군대 창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 외교 안보 분야의 많은 학자들은, 트럼프가 선거 유세 시 언급한 내용을 모두 실질적 정책으로 추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거의 유럽-미국 파트너 관계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며, 서구의 가치는 유럽이 스스로 지켜나가야 할 것이라는 논평을 하고 있다.

스톨텐베르그(Jens Stoltenberg)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11월 13일 영국 신문 ‘The Observer’ 기고에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독단적 안보 정책 추진으로 동맹국과의 신뢰를 상실케 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지난 수년간 러시아의 팽창주의, 중동지역의 분쟁 등으로 많은 NATO 회원국의 안보는 극적으로 악화된 상태이며, NATO는 지난 67년 동안 유럽과 미국의 파트너 관계를 바탕으로 세계 안정에 기여했음을 언급했다. 또한 9·11 사태 발생 후, 미국이 주도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1000명 이상의 유럽 군인이 목숨을 잃은 사실도 상기시켰다.

독일과 유럽 국가들은 미국 트럼프 정부의 등장은 국제적 정치 외교 안보 분야 외에도 경제 통상 환경 정책 등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존의 자유무역협정을 파기하고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추진,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처할 세계기후변화협정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반대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주범이라고 비판한 트럼프의 당선에 따라 EU 집행위는 현재 유럽과 미국 간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중단한 상태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전문가들과 언론의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있었다. 저학력 백인 남성들의 반란, 기존 정치에 대한 분노, 변화에 대한 욕망, 흑인, 라틴계, 여성층의 힐러리 지지 저조, 백인 표 결집의 대이변 등 수많은 요인이 열거되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나아가 미국 사회에서 그동안 보수층과 백인 중산층이 억지로 쓰고 살면서 불편했던 ‘Political Correctness’(인종차별, 성차별, 종교차별을 유발하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 가면을 벗어 던지고 민얼굴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 2016년 11월 9일은, 서구 세계가 70여 년간 추구했던 ‘공동의 번영과 평화적 공존’의 시대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Hobbes)의 시대로 접어든 기점으로 정녕 기록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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