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곰소에서

입력 2016-10-0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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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드러누운 망초마다

하얀 꽃을 입에 물고 있는 동네.

버스가 멈춰서자 채송화 같은 아이들 한 떼가 내린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놀라

소리없이 증발하던 곰소의 오후가 깨어나고

파란 대문집 앞에 서 있던 우체통이 기지개를 켠다.

편지 봉투만한 염전을 하나씩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

바다를 마시던 햇살도 잠들고

수평선에 머물던 어둠이 밀려오면

출렁이던 곰소를 봉투에 담던 이웃들이 염전에서 돌아온다.

장화 사이 새어든 바다를 벗어두고

툭툭 불거진 정강이 힘줄로 버텨 서서

툽툽한 막걸리 잔에 소금기 절인 하루를 마시고 나면

가겟방 누렁이는 긴 혀를 내두르며 잠이 든다.

뼈 마디 속 숨어 살던 저린 숨소리에 잠을 뒤척이는 사이

둘째 등록금을 챙겨야 하는 장씨네 염전에서

핸드폰 사달라고 보채는 손자를 둔 이장네 염전에서

풍으로 드러누운 모친을 병원에 모셔둔 서씨네 염전에서

봉투에 담겨졌던 사연들이 밤잠 못 이루고 증발해 가고

가끔은 꿈 속에서

먼 여행에서 돌아온 갈매기가

끼룩끼룩 털어놓는 모험담을 듣기도 한다.

곰소 사람들의 절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썩지 않고 덧나지 않게 상처를 아물며

결정(結晶)되어 가는 곰소의 바다.

출렁이던 꿈들이 하얀 소금으로 피어나면

사람들은 내소사 큰스님 같은 웃음으로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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