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학산책] 지역문학이 살아야 중앙도 산다

입력 2016-09-09 10:55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한양대 국문과 교수

지역문학의 현황

우리가 ‘지역’ 혹은 ‘지역문학’에 관해 생각해보는 것은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적·제도적 역학의 현상을 따져보는 일이기도 하고, 새롭게 생성되는 탈(脫)중심의 가치들에 대하여 측면적으로 탐색해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한국문학은 ‘중앙’이라고 통칭되는 범주로의 집중이 가속화하여 지금은 그 현상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집중성과 비대함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역’의 독자성과 생성적 가치에 대해 탐색하는 것은 이러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앙 집중 현상을 성찰하면서, 그 나름으로는 분권적이고 수평적인 지역 혹은 지역문학의 생성적 가치를 살피는 긴요하고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는 최근 지역마다 일종의 ‘지역성’(locality)을 점검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여러 기획들이 잇달아 제출되고 있다. 그 가운데 문학 차원에서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현저한 실천 단위는 지역을 모태로 하는 문예지들이 가시적으로 발간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제가끔 자신만의 독자성과 긍정적 역할을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자본과 권력이 집중되는 중심부와 길항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업적 순환 구조를 고스란히 수용하기도 하면서 이 같은 지역 단위의 문예지 활동들은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예지들은 가령 비평 전문지인 ‘오늘의 문예비평’(부산)이나 종합지 ‘문학들’(광주), ‘문학마당’(대전), ‘리토피아’(인천), ‘문예연구’(전북)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시 전문지를 표방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도 ‘시와 사상’, ‘신생’(이상 부산), ‘시와 반시’(대구), ‘시와 사람’(광주), ‘애지’, ‘시와 정신’(이상 대전), ‘다층’(제주), ‘시와 세계’(강원), ‘서정과 현실’(경남), ‘딩아돌하’(충북)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 집중 현상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직도 시가 많은 독자들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도 있겠고, 지역마다 시 이외의 장르를 견인해갈 인력이 태부족이라는 현실적 이유도 가로놓여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지역 차원의 장르 편향 현상 조정 노력은 불가피하다. 이 경우에도 ‘비평가’가 ‘대학’을 제도적 근간으로 하여 배출되고 성장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일정하게 지역마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데 비해, 소설가의 빈곤 현상은 근원적으로 반성적 검토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경영난, 작가난 속에서도 꾸준히 지역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각종 문예지들.
▲경영난, 작가난 속에서도 꾸준히 지역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각종 문예지들.

‘지역성’이라는 테마

주지하듯 ‘지역성’이라는 테마는 결국 인적 자원이 누구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이 가운데 지역 문예지들이 감수하고 있는 것이 출신 문인들의 아마추어리즘 문제이다. 물론 신인 배출 제도는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배출하여 사단화하는 폐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경계하면서 문화 인력을 확충하는 긍정적인 면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지역마다 문화 인구나 문화 인력을 형성하는 데 매체만 한 것이 없고, 그들의 창작 욕구를 지역 문예지가 흡수해주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이 된 사람에 한해서만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는 너무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기에 이른바 지역주의는 중앙의 변방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다는 진단과 아직도 지역 사람들조차 중앙 우월주의 사고방식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혼재한다. 지역 문예지들은 그동안 해당 지역 출신 선배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작품을 발굴하여 축적하는 일을 통해서는 단연 중요한 몫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현재 창작에 매진하고 있는 시인들이나 작가로 한정하면, 지역 문예지들에는 이중적 욕망이 자체 안에 불화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가령 지역의 역량 있는 문인들에게 발표 기회를 주고 지역문화를 이끄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욕과 함께, 중앙을 향한 인정 욕망을 끊어버리기 힘든 아이러니가 개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꼭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로컬의 몫을 실증과 해석의 차원에서 충실히 수행하면서 온 지역에서 공히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의제(agenda·어젠다)를 내보내는 일을 하기 위해 중앙이나 타 지역과의 접속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 활동을 외부에서 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진정한 로컬리티를 사유하고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로컬을 통해 글로벌한 과제를 관통한다는 기획의 사유와 실천이야말로 지역 문예지가 꼭 해야 될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1980년대만 회상해 보아도 우리는 ‘삶의 문학’이나 ‘분단시대’, ‘시와 경제’ 등의 동인지들이 대부분 일정하게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시작된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그들이 한국문학의 주류로 올라와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들의 움직임은 하나같이 지역 운동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지금은 전국이 한나절 생활권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생활을 공유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매체를 내는 것이 예전에 비해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런 흐름을 고수하고 이어가는 이들이 많아 한국문학의 확연한 중앙-지역 비대칭은 점점 완화되어갈 수 있는 기대를 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시 전문 잡지로 이야기한다면, 서울 지역과 다른 지역과의 질적 위계는 없다. 서울이 중앙 집권으로 보이는 것은 종합 문예지를 매개로 한 문화 권력의 집중 때문이다. 서울에서 발간되는 일부 권위 있는 기존 종합지에 사람이 모이고 그런 데서 오는 소외감이 크지, 시 전문지만 놓고 보면 지역 잡지의 수준이 그 어떤 잡지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쪽에서는 시 전문지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 이외의 장르에 대한 장기적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 절실

이렇게 탈중심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중심에 편입하고자 하는 열망이 공존하고 있는 지역문학의 도정은, ‘서양-동양’, ‘남-여’, ‘정신-육체’ 못지않게 ‘중앙(지역)-지방(지역)’의 제도적이고 심리적인 서열화를 극복해가는 필연적 길목이다. 여기에는 ‘차별’이 아니라 수평적 ‘차이’를 구현하는 풍요로운 지역문화가 요청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성의 문제는 타자성, 주변성, 소수자의 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변과 중심의 다층적 연관을 사유하는 새로운 심상지리를 욕망하면서 지역문학 내부에서조차 중앙과 지역을 우열 차원으로 바라보려는 편향된 시각이 있음을 반성하려는 것도 이러한 과제 때문일 것이다.

이제 자본과 제도의 주변부인 ‘지역’은 깊은 식민화와 소외의 편재화를 극복하고, 배타적 로컬리즘이나 지역 중심주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 생성의 공간으로서의 지역문화를 상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 구체적 모형과 방식과 인적 구성에 대해 심층적 의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심화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실존적 부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지역문학의 자생성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중앙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매우 절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자생적 성장이 필요하겠지만, 여전히 문학은 상업성과는 무관한 우리 문화예술의 풀뿌리요, 인프라이기 때문에 외부 지원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이다. 이러한 지원을 축소하거나 끊는다면 그나마 취약한 지역문학의 뿌리는 더욱 쇠잔해갈 것이다. 물론 지역 문예지의 질적 우수성 확보를 위해 철저하고 공정한 심사 기준은 관철되어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우수 문예지 지원 제도를 확장해가면서 그에 따라 우리 지역문학도 더욱 활성화되어 가기를 희망해본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금융권 휘젓는 정치…시장경제가 무너진다 [정치금융, 부활의 전주곡]
  • 요즘 20대 뭐하나 봤더니…"합정가서 마라탕 먹고 놀아요" [데이터클립]
  • "책임경영 어디갔나"…3년째 주가 하락에도 손 놓은 금호건설
  • "노란 카디건 또 품절됐대"…민희진부터 김호중까지 '블레임 룩'에 엇갈린 시선 [이슈크래커]
  •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는 맛집 운영 중"
  • 새로운 대남전단은 오물?…역대 삐라 살펴보니 [해시태그]
  • 尹 "동해에 최대 29년 쓸 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올해 말 첫 시추작업 돌입"
  • "이의리 너마저"…토미 존에 우는 KIA, '디펜딩챔피언' LG 추격 뿌리칠까 [주간 KBO 전망대]
  • 오늘의 상승종목

  • 06.0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5,940,000
    • +1.42%
    • 이더리움
    • 5,302,000
    • +0.11%
    • 비트코인 캐시
    • 646,500
    • +0.31%
    • 리플
    • 724
    • +0.28%
    • 솔라나
    • 229,400
    • -0.56%
    • 에이다
    • 631
    • +0.16%
    • 이오스
    • 1,141
    • +1.06%
    • 트론
    • 159
    • +0%
    • 스텔라루멘
    • 149
    • +0.68%
    • 비트코인에스브이
    • 85,150
    • +0.77%
    • 체인링크
    • 24,970
    • -2.46%
    • 샌드박스
    • 645
    • +4.0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