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 풍경] 더위 속의 농사와 글쓰기

입력 2016-08-1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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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내일이면 8월 하순으로 접어드는데도 여전히 덥다. 나라고 남보다 덜 덥고 체질적으로 더위를 더 잘 참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집에서 글을 쓸 때 가능하면 내 방엔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모두들 폭탄이라고 말하는 가정용 전기료의 무서움 때문이 아니다.

올해 여름은 정말 덥다.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있다 해도 겨울 빼곤 완전 아열대 기후로 진입한 것 같다. 더우면 글쓰기도 싫고 읽기도 싫어진다. 그런데 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린 이달 초 어느 날 고향에서 보내온 옥수수를 먹다가 ‘아, 그래, 이건 더운 것도 아니지’ 하고 잠시 내 인생에서 가장 더웠던 시절을 생각했다.

대학을 다닐 때 방학해서 시골집에 내려가면 그때부터 개학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논밭으로 나가 일을 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하시는 일이니 젊은 내가 안 할 수가 없다. 시골집에서 일을 시키는 것은 어른이 아니라 그 집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다. 사람이 시키는 것보다 수확을 앞둔 작물이 시키는 일이 더 무섭다. 더워도, 비가 와도 해야 한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옥수수밭으로 가 옥수수를 따오면 어머니가 이걸 손질해 가마에 삶는다. 삶은 옥수수 두 개를 하나로 묶어 100개쯤 커다란 양은 함지에 담아 리어카에 싣고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까지 날라다 준다. 그러면 어머니가 그걸 버스에 싣고 강릉 시내로 가 형님 친구가 하는 주유소 앞에 놓고 주유소를 드나드는 서울 버스와 승용차를 상대로 옥수수를 판다. 이게 내 가을학기 등록금이다.

방학 동안 밭에서 감자도 캐야 하고, 강낭콩도 비를 맞아 싹이 나기 전 거둬들여야 하고, 밭에 난 풀도 매야 하고, 약도 쳐야 하고, 점심을 먹고 난 다음 한낮에는 잠시 쉬지만 오후 3시쯤 리어카를 끌고 나가 매일 리어카 하나 가득 논둑의 꼴을 베어 와 소에게 줘야 한다. 이건 비가 오는 날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먹으면 소도 먹어야 한다. 우리 동네에 우리 집만큼 아들들을 일 많이 시키는 집도 없었다. 우리도 어릴 때부터 당연히 어른이 하는 일을 아이들이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개학 때가 되어 거울을 보면 얼굴이 완전?‘불농군’?수준이다. 화전민을 불농군이라고 부르는데, 일반 농부보다 얼굴이 더 검고 많이 타면 불농군이라고 불렀다. 개학 전날까지도 여름 내내 30도 이상 올라가는 더위 아래 밭에 나가 일하고 논에 나가 일해야 한다. 다른 농부는 1년 내내 하는 것을 나는 고작 방학 동안만 한다. 내가 글을 쓰면서 가능한 한 엄살 부리지 않는?이유가 글쓰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농부가, 또 내?젊은 날 힘들게 했던 들일보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은 농사일을 육체적 수고로만 이해하는데 이 세상에 복중 양지에 들에 나가 일하는 농사일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더 힘든 일은 없다. 이것은 매 순간이 극기의 시간이다. 여기에 비하면 방에서 에어컨 대신 선풍기라도 틀고 하는 글쓰기는 신선놀음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신선놀음이 직업이 되다 보니 이것조차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달 초에 고향에서 보내준 옥수수를 먹다가 ‘그래,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제 8월 하순이다. 시절을 이기는 더위가 있던가. 문득 옛 생각이 들어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책상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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