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 이야기] 어머니와 더 많은 추억을

입력 2016-05-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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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경영연구소장

어버이날, 마음 한구석이 헛헛했다. 사위와 딸이 마련해 준 첫 번째 어버이날인데도 어머님 없이 맞은 어버이날의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장모님을 위해 우리 부부가 마련한 식사 자리에서 처형이 굳이 계산을 하겠단다. 고아가 된 내가 불쌍해서 자신이 계산하는 거라고 해서 마주보며 웃었다.

재작년, 40년 만에 아버님 옆에 묻히신 어머님은 자식을 삶의 전부로 알고 사신 분이었다. 겨울에 차디찬 요와 이불을 당신의 몸으로 손수 덥혀 아들을 재우시던 어머님, 병든 아버님을 홀로 수발하며 시골에서 하숙을 쳐서 자식 등록금을 부쳐주시던 어머님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여쭤보았다. “어머님은 무슨 낙으로 사시느냐?”고. 어머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무슨 낙이 있겠노? 너희들 키우는 보람으로 살지.” 집이 없어 남의 집에 전세 살면서, 수업료를 제때 못 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 가서 수업료 가져오라는 선생님 분부에도 난 풀이 죽거나 어머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요만큼의 공간이 있다는 것, 어머님이 정성 들여 싸주시는 도시락을 들고 등교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것은 ‘학중이 학중이’ 하며 자식을 끔찍이 챙겼던 어머님이 물려주신 자존감 덕분이었다. 아버님이 물려주신 인내와 절제라는 유산, 어머님이 평생 몸으로 보여 주신 헌신과 지혜는 나의 가장 큰 자산이다.

유난히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난다는 아내가 나를 먹먹하게 할 때가 있다. “우리 어머님 같은 시어머님은 없다”고 아내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우리 어머님은, 며느리가 존경하는 시어머님이었다. 어머님을 아버님 곁에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느낌보다 위대한 여성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이 더 컸다.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어머님이었지만 참으로 지혜로우셨다. 생각 없이 던진 얘기로 자식 간에 분란을 일으키는 부모도 많지만 자식에게 “서운하다, 불만이다”라는 불평 한 마디 없이 늘 “감사하다, 고맙다”는 얘기를 노래처럼 하셨다. 전화 드리고 찾아갈 때마다 “바쁜데 뭐 하러 왔노?”라는 어머님께 “막내아들이 찾아와서 기분 나쁘세요?” 물어보면 “기분이 너무 나쁘다”며 웃으셨다.

대문까지 나와서 자식을 배웅해 주시던 구순을 넘긴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용돈 몇 푼 드리고 일주일에 한 번 찾아뵙는 것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부끄럽다. 그래도 어머님 쓰러지기 전, 어머님 찾아뵙는 것을 ‘생방송’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했던 것은 참 잘한 결정이었다. 생방송은 그 시간에는 꼼짝없이 스튜디오에 가 있어야 되는 일이다.

그런데 ‘어머님을 내가 뵈면 얼마나 더 뵐 수 있을까’ 생각하니 어머님 찾아뵙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어머님 모시고 남한산성에도 가고 63빌딩 수족관도 보여드리고 팔각정에도 갔던 기억이 새롭다. ‘어릴 땐 어머님이 날 이렇게 데리고 다니셨지’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했다.

그러나 좀 더 자주 찾아뵐 걸, 어머님 얘기 더 많이 들어드리고 더 많은 추억을 함께 쌓을 걸, 하는 후회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있지만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다음 주엔 어머님 아버님을 뵈러 고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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