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 풍경] 비싸고 화려한 등산복

입력 2016-04-1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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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직업이 소설가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어쩌다 보니 지난 몇 해 동안 고향 강원도에서 ‘강릉 바우길’이란 이름의 걷는 길을 탐사했다. 일 년쯤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몇 년간 계속되어 지금은 기본 코스로만 19개 구간 300km가 넘는 걷는 길이 탐사되었다.

그렇게 몇 년 애쓴 덕분에 강릉 바우길은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트레일이 되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찾아온다. 걷는 것은 운동과 명상을 함께 한다.

그러데 요즘 걷는 길 위에 나가 보면 등산 복장이든 트레킹 복장이든 정말 울긋불긋 여간 화려하지 않다. 디자인만 화려한 게 아니다. 이름 좀 있다는 브랜드로 갖춰 입으면 100만 원은 가뿐히 넘는다고 한다. 가을과 겨울옷은 특히 그렇다. 아웃도어 패션이라는 말을 등산이나 트레킹 애호가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일상용어처럼 사용할 정도이다. 강원도의 높고 깊은 산도, 그냥 산책 삼아 나가는 교외의 걷는 길도 지금 한국의 산과 길은 이런 옷들로 가득 차 있다. 동네 뒷동산에 올라가면서 에베레스트에 입고 갈 만한 고가의 기능성 옷들과 장비를 챙긴다.

얼마 전 어떤 신문에서 우리나라 아웃도어 시장 규모가 5조 원 가까이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구 3억이 넘는 미국이 11조 원 정도이고, 인구 8200만 명에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넘는 독일도 우리보다 아래인 3조 원 정도라고 한다. 소득 대비를 해보든 인구 대비를 해보든 이 정도 되면 이건 패션도 산업도 아닌, 말 그대로 허영과 사치의 놀음이다.

물론 겨울이면 사정이 좀 다르다. 영하 15도로 내려가 체감온도가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 대관령길을 걸을 때는 두툼한 방한복에 하루 종일 눈길에도 젖지 않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 아무래도 봄옷이나 여름옷보다는 비싸다. 그러나 아무리 든든하게 입어도 보통으로 차려 입은 회사원 출근 복장 수준을 넘지 않는다. 이건 내가 바우길을 함께 탐사할 때 사무국과 탐사대, 자원봉사자 분들께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자연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 길 위에 옷으로 위화감을 느끼게 하지 마라. 특히 길을 탐사하고 안내하는 우리들의 입장은 더욱 그렇다. 전국의 걷는 길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고가의 브랜드 옷을 입고 나서야 하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에 또 하나의 허영이고 거품 같은 일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도 강원도로 걸으러 갈 때든 혹은 동네 주변 산책로로 나갈 때든 내 복장부터 점검해본다. 모자는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에서 산 밀림모자를 쓴다. 나는 산길에서 잘 넘어지는데 3만 원짜리 밀림모자가 안전모 역할을 해준다. 동네 마트에서 구입한 일반 남방 1만9000원, 늘어남이 좋은 봄철 바지 3만원, 국산 워킹화 8만4000원(하루 종일 걷기 때문에 신발은 잘 선택해야 한다),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넣어 메고 다니는 배낭 6만원, 배낭 안에 몇 가지 옷들, 우비,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자연을 찾아 길을 걷는 동안에도 자기 개성을 더 발산하고 뽐내고 싶은 부분도 있겠지만, 그러나 걷는 길을 탐사하고 그곳으로 세상 사람들을 초청하고 불러내는 사람으로서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제발 산이 놀라게 입고 다니지 말자. 함께 걷는 사람이 등산복과 장비에 위화감을 느끼게 하지 말자. 이것도 자연과 함께 걷는 사람이 지켜야 할 산과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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