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인간존중은 행복한 사회의 토대

입력 2016-01-2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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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지난해 말(12.29) 기사 한 꼭지가 오랫동안 내 시선을 붙잡았다. 우리 사회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년 청소년 정직지수 조사’ 결과, 고교생의 56%, 중학생의 39%, 초등학생의 17%가 ‘10억 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50%가 넘는 고교생이 10억 원의 돈이 생긴다면 1년 형량의 범죄는 저질러도 괜찮다는 조사 결과도 놀랍지만 더 큰 우려는 3년 전의 조사 때보다 고교생은 12%포인트, 중학생 11%포인트, 초등학생 5%포인트가 각각 증가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사회를 알아가는 나이가 될수록 돈이 생긴다면 범죄를 저질러도 괜찮다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 사회에서 범죄는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범죄를 행하는 사람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유엔이 발표한 ‘세계 행복보고서’의 대표 저자인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존 헬리웰 교수는 행복사회를 만드는 중요 요소로 ‘구성원 간 신뢰’와 ‘사회적 지원’을 말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돈’이 생긴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라도 괜찮다는 의식이 만연해가는 우리 사회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행복하기 어려운 사회이다.

우리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신뢰가 부족한 사례를 찾는 것은 너무도 쉽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너무도 쉽게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신뢰를 무시한다.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일베의 폭식 투쟁’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관련, ‘엄마부대봉사단의 일본 용서 요구’가 대표적 사례다.

일베 회원들은 2014년 9월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농성장 바로 옆에서 단식 중단을 요구하며 피자와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1989년 영국의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96명의 축구팬이 사망한 후 영국 시민들이 보인 반응과 비교해 보면 한국사회의 인간존엄성과 윤리의식의 빈곤함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

영국 시민들은 무려 26년 동안 힐즈버러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안아주고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 싸웠다. 그 결과 정부(공무원)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문화와 제도를 갖출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일베와 보수단체들은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을 앞세워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부모들의 아픔을 조롱하고, 진상 규명을 방해했다. 이들에게 유가족과 희생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없었다.

또 지난해 말에는 한일 정부 간에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있었다. 합의 내용도 문제지만 더욱 참담한 것은 소위 엄마부대봉사단의 행태였다. 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한국이 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이 희생해 달라”며 “아베를 용서하라”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 어느 곳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반인류·반인도적 범죄라는 인식이나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양국의 경제협력을 강화해 한국이 힘을 키우는 기회’로 삼자는 허망한 애국심만 가득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가 인간애가 가장 필요한 곳에서조차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사라지고 ‘돈’이 기준인 사회로 가고 있다. 인간애가 사라지고 ‘돈’이 모든 걸 우선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행복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치지도자의 철학이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생활과 의식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총선이 ‘인간존엄’의 정치철학을 갖춘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와 함께 기성세대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줄지 깊이 성찰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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