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순원의 ‘행복 동화’ - 아빠의 크리스마스 선물

입력 2015-12-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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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 일찍 집에 들어와요?”

아침에 은지가 물었다. 아빠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들처럼 일찍 집으로 들어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빠는 대답 대신 머뭇거리며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은지야, 아빠 오늘 밤 일하셔.”

대신 엄마가 말했다. 아빠가 하는 일은 큰 회사의 건물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흘에 한 번 회사에서 밤을 새웠다. 지난봄 어린이날에도 종일 회사에 나가 있었다.

“우리 아빠만 밤에 일해.”

초등학교 일학년인 은지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회사에 나가 있는 동안 아빠도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늘 같은 날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 다시 은지가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엄마하고 아빠 회사로 가요.”

아빠가 집에 오지 못하니 은지가 엄마와 함께 회사 앞으로 와 잠시 아빠 얼굴을 보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밤에도 일하는 아빠 응원하러 가는 거예요.”

그럴 줄 알았으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회사로 가져오는 건데 그랬다. 그건 밤 근무를 마치고 내일 아침에 주려고 어제 미리 집에 준비해 두었다. 와도 오래 보지도 못할 텐데 참 난감한 일이었다.

“이따가 우리 아이가 온다는데 나갈 수도 없고, 참….”

“저걸 어쩌나. 그러면 회사 앞으로 바로 오지 말고 길 건너편에 와서 전화하라고 하세요.”

아빠와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 밤 근무를 하는 전기실 아저씨가 말했다.

“길 건너편엔 왜?”

“그냥요. 그러면 내가 은지가 평생 잊지 못할 선물 하나 준비해볼게요.”

전기실 아저씨는 어린 시절 대관령 아래 아주 깊은 산골에서 자라 중학생이 될 때까지 교회를 보지 못했다. 책에서 사진과 그림으로는 교회를 보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교회구나, 하고 지붕 꼭대기에 십자 철탑이 있는 교회 건물을 처음 본 것은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같은 건 더더욱 생각할 수가 없었지요. 크리스마스 때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가고, 서로 선물 같은 걸 주고받는다는 걸 책에서만 보았지 현실에서는 그저 꿈과 같은 이야기였어요. 산타클로스 이야기 같은 건 더더구나 먼 나라 이야기였지요.”

그건 비교적 도회지에서 자란 은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교회 건물이야 일찍 보고 자랐지만 세계 방방곡곡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주는 산타클로스가 그의 집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라도 아빠는 크리스마스 날만큼은 서로 선물도 주고받으며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었는데, 현실은 오히려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내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다시 전기실 아저씨가 말했다.

“초등학생 때만이 아니라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가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어요. 크리스마스가 오면 방학을 했고, 매일 얼굴을 보는 가까운 친구들끼리 방학 전에 우리 손으로 그린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을 교실에서 서로 주고받는 게 전부였지요. 이때 만들다 망친 카드 한 장을 동생에게 주면 동생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우리 남매들에게는 유일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어요. 열심히 카드에 교회 그림을 그리고, 우리한테는 오지도 않을 산타클로스 그림을 그려 동생에게 주었던 거죠.”

“그래도 동생은 오빠한테서 좋은 선물을 받았구먼.”

“내가 내 손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해본 것은 군대에 가서였어요. 강원도 산골 마을에 있는 전방 부대였는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생활실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지요. 반짝반짝 오색전등을 두르고, 나무에 눈이 내린 것처럼 약솜을 얹자 내가 이제까지 봐온 어떤 것보다 더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더군요. 사람들은 저마다 집에서 오고 또 애인이 보내온 크리스마스 카드를 실에 꿰어 트리에 매달았지요. 나도 집에서 동생이 보내온 카드를 그곳에 매달았어요.”

“그럼 자네는 그때까지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가?”

“예. 그렇지만 그날 새벽에 평생 잊지 못할 엄청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지요.”

“아니, 어떻게? 부대에 있었다면서?”

“내가 불침번을 서고 있을 때였는데 창밖엔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아직 한밤중처럼 깜깜한?새벽이었는데, 밖에서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주고받는 말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아니 누가 이 산중의 부대에까지 찾아온 거지? 군인이었던 전기실 아저씨가 밖을 내다보려고 하는데 바로 문밖에서 아이들이 ‘징글벨’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를 부르더라고 했다. 부대 바깥 동네 아이들이 동네 부근에 있는?부대마다 찾아다니며 크리스마스 노래를 불러주었던 것이다.

“노래가 끝나길 기다려 문을 열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아저씨,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인사를 하는데, 왈칵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거예요. 가슴 저 밑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동을 가까스로 누르고 매우 어색한 모습으로 겨우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인사를 했지요.”

“감동적이구먼.”

“밤이면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 새벽에 군인인 우리가 보호해야 할 그 아이들이 오히려 우리를 위해 창밖에 와서 노래를 불러주었던 거지요. 지금도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날 새벽의 가슴 먹먹한 감동을 잊을 수 없어요. 아,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곁으로 오셨구나. 나는 아직도 그날 새벽 어린 천사들의 방문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전기실 아저씨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눈가에 맺힌 이슬을 걷어내며 “어린이들에게 진 빚이니까 오늘 은지에게 그 빚을 갚아주어야겠어요”라고 했다.

저녁에 회사 사람들은 모두 일찍 퇴근을 했다. 은지 아빠는 건물 층층마다 둘러본 다음 제일 꼭대기 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늘에 어둠이 내리자 도시는 마치 온 세상의 전등을 다 켠 것처럼 오색찬란하게 빛났다. 그때 아빠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빠, 저 지금 엄마하고 회사 건너편에 왔어요.”

“그래? 아빠는 지금 맨 꼭대기층에 있단다. 거기에서 이쪽을 잘 봐, 은지야.”

아빠는 아까 아저씨가 시킨 대로 말한 다음 다시 전기실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게. 지금 우리 은지가 왔다네.”

“그럼 여기로 내려오지 말고 그 자리에서 은지를 찾아보세요.”

아빠는 전기실 아저씨가 왜 그렇게 하라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길 건너에 아주 작은 모습으로 엄마와 함께 서 있는 은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멀기도 하고 또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어 손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마치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한 듯 은지가 전화를 했다.

“아빠, 보여요!”

“뭐가? 아빠가?”

“아뇨. 아빠 말고 아빠가 쓰는 글씨가요.”

“글씨?”

아빠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 아빠가 지키고 있는 회사 건물 벽엔 한 글자 한 글자 반복해서 ‘아빠 ♥ 은지’ ‘축 성탄’이 별처럼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전기실 아저씨가 전기실의 컴퓨터를 이용해 큰 건물의 어떤 방엔 불을 켜고, 어떤 방엔 불을 꺼서 글자를 새기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 저도 아빠 사랑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은지가 감격하여 울먹이듯 말했다.

“그래, 아빠도 우리 은지를 사랑한다.”

처음엔 그냥 길을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건너편 건물에 한 글자 한 글자 글씨가 바뀔 때마다 박수를 쳤다.

“우리 아빠가 저에게 보내는 문자예요.”

은지가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그런데도 아빠만 사람들이 왜 이쪽을 쳐다보고 박수를 치는지 모르고 있었다.

별이 눈처럼 쏟아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축복 있길…….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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