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디지털 블랙홀 시대의 경고

입력 2015-06-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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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온라인국장

지금처럼 글이 쏟아진 시대가 있었을까.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수많은 사람이 모여 엄청난 분량의 글로 곳곳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또 최근에는 디지털화된 사진과 음악, 영상까지 더해지며 분야와 종류를 더 넓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글과 사진 등의 수명은 과연 언제까지일까. 디지털화가 되어 있는 만큼 보관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미 대중화된 1TB 용량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는 사진과 음악 파일을 각각 25만개(4MB 기준), HD급 동영상(800MB 기준) 120시간 분량을 담을 수 있다. 문서의 경우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과거 도서관 하나를 빼곡히 채울 수 있는 책의 분량은 이제 단 몇 개의 HDD로 옮겨 놓을 수 있는 수준에 왔다.

이 가운데 TCP/IP를 개발해 ‘인터넷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구글의 부사장 빈트 서프의 한마디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개최된 미국 과학진흥협회 연례모임에서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잊힌 세대, 아니면 잊힌 세기’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문서, 음악, 영상 등 디지털 기록물들은 종이와 같은 물리적 매체에 담겨 보관된 과거의 기록물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접근성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를 경우 기존의 기록물은 언어의 해독법이 유지만 된다면 그 내용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디지털 저작물들은 판독방식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빠른 정보의 손실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수천년 전 파피루스나, 수백년 전 양피지에 기록된 글들은 지금도 그 언어만 알고 있다면 아무런 도구 없이도 읽을 수 있지만, 수십년 전 8비트 컴퓨터에서 사용됐던 카세트테이프나 이후 적용된 플로피디스크 등에 담긴 자료를 읽기 위해서는 전용의 드라이브를 구하기 위해 고물상이나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또한 각 기기를 운영하기 위한 운영체제와 기록과 해독을 위한 전용 프로그램도 구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데이터들은 단 한 번의 조작으로 모두 삭제가 가능하며, 보관율도 좋지 않다. 게다가 이를 보관하기 위한 노력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올 1월 국립한글박물관은 1998년 출시된 ‘아래아한글 1.0’ 패키지를 찾는 공고를 냈다. 아래아한글 1.0은 1989년 4월 발매된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으로 ‘한글 디지털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2013년 6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하지만 그 초판본 패키지(5.25인치 플로피디스크 3장과 설명서)를 찾을 수 없자, 국립한글박물관은 5000만원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그러나 아직도 아래아한글 1.0 패키지를 발견해 포상금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고 있다.

만일 아래아한글 1.0으로 제작된 문서를 읽어야 한다면, 해당 프로그램을 구해야 하며, 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그리고 문서가 담긴 보조저장장치를 구동할 수 있는 드라이브 장치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물론 아직은 정품 패키지가 아닌 아래아한글 1.0의 복사본을 구할 수 있고, 이를 구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 등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 시간이 흐른다면 이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서프는 이를 두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정보를 블랙홀에 던져 넣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가까운 과거의 자료들이 훨씬 오래전 자료보다 더 접근이 힘들어진 것이다. 데이터 보관의 용이성은 디지털화의 이점으로 일컫지만, 이는 당 시대에 국한된 말일 뿐 현실은 파피루스에 석탄으로 기록된 글보다 더 영속성이 낮은 게 현실이다.

물론 현대의 역사가들도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보존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자료의 중요성은 수백년이 지나야 드러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결국 자료의 손실은 피할 수 없다.

서프는 이를 놓고 “기원전 3세기의 수학자들이 무한과 미적분학에 대한 개념을 예측하였다는 사실을 현대의 역사가들이 알 수 있었던 이유는 13세기 비잔틴 제국의 기도서 사이에서 우연히 아르키메데스의 문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사례를 들었다.

언론매체도 이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디지털과 온라인 시대의 도래는 신문이라는 물질적인 영역을 넘게 했다. 이 때문에 지역적인 한계, 담을 수 있는 분량의 제한 없이 엄청난 분량의 콘텐츠를 만들어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디지털 블랙홀 시대를 맞아 언론매체가 고민해야 할 것은 뭘까.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어떻게 독자에게 전달할까’라는 당면한 업(業)의 고민을 넘어야 하는 것이 첫 번째다. 디지털 자료의 보존에 대한 문제의식은 언론매체 역시 가져야 할 부분이다. 미래에 지속될 기록물을 남기기 위해 기술적인 문제를 포함해 복제와 보존을 위한 저작권 문제, 보존권의 문제까지 깊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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