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균 기자의 B하인드] 대한민국 공직자로 산다는 것은

입력 2015-06-16 10:52 수정 2015-06-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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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균 산업국 정보통신팀장

지난해 연말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호사를 누린 적이 있다. 9년여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주 짧은 백수 기간 때다. 새벽 동이 틀 무렵까지 텔레비전도 실컷 보고, 늦잠도 자면서 백수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했다.

집에서 뭉그적거린 지 나흘째 되는 날 그 꼴이 보기 싫었던지 아내가 아침에 잠을 깨웠다. 초등학생인 첫째와 유치원생인 둘째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아주 이른 아침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뜸 아내가 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결혼 전에 느꼈던 데이트를 즐기고 싶다고 말하길래 그러자고 했다. 화를 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아내는 다소곳이 데이트를 신청하는 게 아닌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신발을 찾아 아내와 함께 나섰다.

인근 영화관에 도착해서 뭘 볼지 고민할 기회도 없이 아내는 ‘국제시장’이란 영화표를 사들고는 곧바로 영화관 좌석으로 직행했다. 그때까지도 아내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다. 영화의 첫 장면이 나온 뒤 2시간 6분에 걸친 상영시간 동안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영화에 푹 빠졌다.

영화 ‘국제시장’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파독 광부와 간호사, 월남전 파병 등 격변의 대한민국 역사 속을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투영했다. 영화가 끝난 뒤 뇌리에 남은 것도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의 삶이었다. 영화 속에서 덕수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 본 적 없이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한 헌신적인 가장이었다.

영화관에서 나온 뒤 스스로에게 반문하기를 여러번 했다.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백수가 아닌 지금은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당당히 답하겠지만 말이다. 당시에는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한 스스로가 많이 부끄러웠다. 아마도 아내가 철없는 남편의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작심하고 준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대한민국 평범한 가장이라면 비슷한 답을 내놓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공직자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가족을 비교 대상으로 놓기는 뭣하지만, 최근 내가 곁에서 지켜 본 대한민국 공직자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다. 지난 주말에도 새벽까지 남아 일하던 공직자도 그랬다. 그 공직자는 “국가를 위한 사명감이 없으면 대한민국 공직자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역대 정권이 권력형 비리로 몸살을 앓아도 대한민국의 틀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대다수 공직자들이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직사회 곳곳에서 푸념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국가를 위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공직자라도 당근은 없고 채찍만 해대니 누가 견뎌낼 수 있겠는가. 박근혜 정부의 상징으로 출범한 미래창조과학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업무 강도로 따지자면 중앙 부처 가운데 가장 쎈 곳으로 느껴질 정도다. 주중에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근무하고, 주말에도 나와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족을 뒤로하고 국가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그런 수고의 대가를 제대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난과 지적의 목소리가 많다. 실수 하나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모든 것이 긴장의 연속이다. 게다가 인사 적체는 가뜩이나 힘든 공직자를 더 힘들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래부 출범 이후 고위공직자 대열에 합류한 인원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부는 국정 성과 창출을 가시화한다는 명분 아래 집중근무 시간제, 일상적 회의 30분 종료제 등 업무 효율화 방안을 이달 1일부터 전면 도입했다. 근본적인 처방이 아닌데 과연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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