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사진기의 구멍이 작을수록 더욱 또렷한 상(像)이 맺힙니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인간이야말로 작아지며 그 작은 인간을 통해 보이는 세계가 한없이 넓게 펼쳐집니다. 그런 위인들을 통해 우리는 진정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거지요…우리 되도록이면 작아집시다. 작은 인간이 되어 우리의 후대에게 더욱 아름다운 인간과 세계를 보여줍시다. 눈앞에서 커 보이는 사람은 절대 위인이 아닙니다. 작아집시다. 그리고 더 작아집시다. 써놓고 보니 부끄럽습니다. 내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면 용서하시고 일간 한번 봅시다. 친구들 건강을 빌며…’김창완(61)이 조선일보에 5월30일에 실린 칼럼 ‘가수 김창완의 그래 걷자-친구들에게’을 읽고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MBC 월화드라마 ‘화정’에서 이원익역을 맡은 김창완 연기를 보고 전율을 느낀다. 올들어 발매한 김창완 밴드의 세 번째 앨범 ‘용서’의 타이틀곡 ‘중2’를 들으며 그 메시지와 리듬에 감동한다.
글을 쓸 때나 노래를 부를 때, 연기를 할 때 김창완은 일관된다. 김창완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성과 상상력을 글로, 음악으로, 그리고 연기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TV나 라디오, 길거리, 카페, 커피숍 등에서 자주 들려오는 노래가 있었다.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너의 의미’였다. 그런데 1984년 산울림 10집에 수록된 김창완의‘너의 의미’가 아닌 아이돌 스타 아이유와 김창완의 콜라보레이션의 ‘너의 의미’다. 아이유의 맑은 음성에 김창와 기교 없는 담백함이 배어 있는 목소리가 더해진 ‘너의 의미’는 신세대에겐 요즘 음악에서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스물 둘 살의 아이유는 말했다. “김창완 선배님은 나의 미래이자 롤모델”이라고. 김창완(61)은 연령대나 그에 대한 정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 스타다.
어떤 이에게는 가수이고, 어떤 이에게는 연기자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천재적 작곡, 작사가이고 어떤 이에게는 방송 명DJ이자 MC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김창완은‘만능 엔터테이너’수식어의 최적격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수로서, 창작자로서, 연기자로서, 방송 진행자로서 최고의 활약과 실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가요계 선배들 중 천재는 딱 한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분이 바로 김창완 선배입니다. 음악만 들었을 때도 김창완 선배님이 천재라고 생각했지만 일상에서도 그것을 경험합니다.”후배가수 장기하의 말이다.
“음악을 하게 된 것은 정말 충동적이었다. 어느 날 음악에 홀리듯이 빨려들었다. 이것이 음악을 하게 된 이유다”라고 말한 김창완은 1977년 동생 김창훈, 故김창익과 함께 산울림을 결성, ‘아니 벌써’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산울림 13집 앨범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김창완 독집 앨범도 냈다. 그리고 동생 김창익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뒤에는 김창완 밴드를 결성해 음악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김창완이 작사, 작곡한 음악과 발표한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과 최고의 음악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곡으로 그리고 한국 음악의 지평을 확대한 것으로 전문가와 일반인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트로트와 발라드, 그리고 이지리스닝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1970년대 후반부터 줄곧 대중음악계의 암울한 터널 속에서 한줄기 빛이자 혁명이었던 음악이 김창완의 산울림 음악이었다.
“과잉된 정서의 주류 음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에 도전하고 싶었다. 열악한 음악환경과 상투적인 음악과 차별화된 음악으로 문화적 도전을 하고 싶었던 것이 산울림의 음악의 등장동기이자 존재의미였다. 코스모스는 가장 척박한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산울림은 척박한 환경에서 도전을 밑거름 삼아 피어낸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말했다. 김창완의 앨범과 음악이 명반과 각종 음악적 찬사와 인정을 받은데 대해서는 “세월이라는 비평과 비판을 겪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연기자로서는 어떤가. ‘바다의 노래’‘잠들지 않는 나무’‘연애의 기초’‘정글스토리’‘은실이’‘아일랜드’‘하얀거탑’‘커피프린스1호점’‘그들이 사는 세상’‘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마의’‘밀회’‘비밀의 문’등 수십 편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진정성 있는 캐릭터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연기를 전공한 연기자를 능가하는 연기력을 보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상성의 이웃집 아저씨 연기에서부터 개성 강한 악역에 이르기까지 빼어난 연기력을 보이고 있다.
‘하얀 거탑’에 함께 출연한 이선균은 “‘하얀거탑’때 김창완 아저씨와 연기한다는 게 신기했어요. 편안한 연기 그분께 많이 배웠어요. 그게 내공이 아닐까 싶어요. 김창완 아저씨는 연기자로서, 인간으로서 저의 진정한 멘토입니다”고 찬사를 보냈다. “연기를 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어요. 음악이나 연기는 모두 대중에게 위로를 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김창완에게 연기면 연기, 음악이면 음악 그야말로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이 놀랍다는 말을 건네자 김창완은 “바닷가에서 조개하나 더 주운 것 이지요”라며 웃는다.
그리고 김창완은 라디오 DJ로 그리고 TV프로그램 MC로 그만의 색깔을 드러낸 진행으로 눈길을 끌뿐만 아니라 소설 ‘사일런트 머신 길자’(마음산책)과 ‘소울 푸드’등 문필가로서 의 역량도 드러내고 있다.
음악 작곡에서부터 소설 집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성공을 이룬 창작의 원천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창완은 답했다. “창작의 원천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며, 창작의 영감은 새로운 필(feel)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다.”
그리고 덧붙였다.“‘직장인들이 하루 8시간 일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기타를 하루 8시간 이상 쳤다’한 후배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장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저 역시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그가 인상적으로 읽었다는 ‘우연한 걸작’의 한 귀절 ‘치열하게 사는 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고 예술적인 삶에선 필수적이다’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공연과 연기를 하는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그가 음악에, 연기에 얼마나 치열한가를 금세 절감하게 된다.
우리시대의 최고 엔터테이너이자 뮤지션, 김창완의 삶과 예술 활동은 천재성과 경험 그리고 치열함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김창완과 만남이나 인터뷰에선 늘 공존하는 두 가지 분위기가 있다. 깊은 사유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담긴 말과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다. 병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분위기를 기막히게 조화시키며 만나는 사람에게 강한 여운을 남긴다.
‘가장 큰 바람이 뭐냐’는 우문(愚問)을 던졌다. 소박한 현답(賢答)이 돌아온다.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많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 나 역시 일상의 소소함에서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김창완의 가장 큰 바람에 대한 답을 들으면서 그가 이미 바람을 이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전해주는 아들 이야기 때문이다. “아들이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일반 직장인인데 어느 날 자신이 노래를 만들었다며 들어봐 달라고 해서 너무 기뻤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장에 입사했을 때보다 정말 더 기뻤다. 아들이 비로소 행복지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거나 콘서트 등이 끝나고 만나면 늘 던지는 말 역시 김창완답다. “홍어에 막걸리 한잔하자”며 단골집으로 이끈다. 김창완을 만나면 늘 아름다운 그의 향취가 오래 남는다. 김창완은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