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자업계의 선발 주자는 미국과 한국이다. 미국은 애플을 중심으로, 한국은 삼성전자가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전자는 누구나 잘 알다시피 중국이다. 막강한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급부상했다.
백색가전의 경우 전 세계 시장은 중국 하이얼이 왕좌를 차지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 연속 하이얼을 글로벌 가전업체 1위로 선정한 바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업체들은 저가 제품을 다량으로 공급하는 만큼, 매출은 크지만 이익은 크지 않다는 시각이었으나 최근 들어 사정은 달라졌다.
칭다오하이얼은 지난해 888억 위안의 매출과 50억 위안의 순이익을 거뒀다. 매출은 전년 대비 2.5% 늘었지만, 순익은 19.6% 늘었다. 하이얼전기도 매출 671억 위안, 순이익 24억 위안의 실적을 거뒀다. 매출 7.8% 상승에 순이익은 20.1% 상승이다.
하이얼이 다는 아니다. 현지 가전 2, 3위 업체인 메이디와 TCL의 부상은 위협적이다. 지난해 이 회사는 매출 1423억 위안에 순이익 105억 위안을 기록했다. 매출은 17.2% 늘었지만 순이익은 44.5% 증가했다. TCL 역시 매출 1010억 위안(18.4% 증가), 순이익 42억 위안(46.7% 증가)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
가전이 아닌 모바일 기기에서도 중국 업체들에게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미 중국 현지에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현지업체의 성장에 밀려 4위권으로 떨어졌다. 1위는 샤오미, 2위는 애플, 3위는 화웨이가 차지했다.
TV 역시 삼성전자가 9년 연속 글로벌 시장 1위를 이어가고 있으나 하이얼, 하이센스(하이신), TCL의 추격이 매섭고, 스마트폰 업체인 샤오미까지 뛰어들면서 향후 시장 전개는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이미 적신호는 켜졌다. 올 1분기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사업부는 14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TV 사업을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의 손실이 1000억원 후반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TV가 주력인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부도 영업적자 62억원을 기록했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시장이 성숙되고 제품의 평준화가 이뤄지면 중국 업체들이 득세를 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후발업체의 추격이 빨라질수록 선발업체들은 물량 위주 전략을 포기하고 적은 판매량에도 수익을 최대한 지켜낼 수 있는 프리미엄 시장에 전력투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한시적이다. 시장에 또 다른 성장 아이템이 등장하는 것은 필연이며, 이는 기업의 흥망을 다시금 결정짓는 잣대가 된다. 위기이자 기회이며, 기회이자 위기의 변곡점이다.
전자산업에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아이템인 3D프린터나 드론(무인기) 등에서 한국 업체들은 특별한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신 아이템은 벤처나 중기가 대기업으로, 다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양이다. 대-중-소 기업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반면 중국은 새로운 아이템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차세대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부상하고 있다.
일례로 세계 1위 드론 제조업체인 SZ DJI 테크놀로지는 이달 초 7500만 달러(약 811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DJI의 기업가치는 약 80억 달러로 치솟았고, 추가 투자를 통해 1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선전 소재의 DJI는 올해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3년 매출이 1억3000만 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불과 2년 만에 10배 성장이다.
한국 전자산업의 진짜 위기는 삼성이나 LG 등 대형 업체들이 실적이 떨어질 때가 아니다. 진짜 위기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업체로 부상하는 ‘스타 기업’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다. 이는 산업 구성원들의 생태계 선순환이 멈춰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한 기업의 장악력과 힘은 영원하지 않다. 애플도 언젠가는 수명이 다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미 애플도 절벽 끝에서 구사일생으로 회생한 기업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