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의 과학에세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수학자

입력 2017-10-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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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문학작품 속에 수학적 장치를 숨겨놓은 경우는 의외로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예는 영국 작가 루이스 캐롤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우리나라 시인 이상(李箱)의 시에서도 난해한 수와 기호의 사용과 수열의 개념이 시적 형식으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옥스퍼드대학 수학 교수였던 찰스 도지슨은 아이들을 위한 책을 여러 권 썼는데, 본명을 감추고 루이스 캐롤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1865년에 출간되어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세계 17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도 이 작품을 무척 좋아해 후속 작품을 자신에게 헌정하라고 했는데, 그는 도지슨이라는 본명으로 ‘행렬식의 기초’라는 수학책을 출간하면서 여왕에게 헌정해 주위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기호 논리학과 수학 퍼즐을 즐겼던 수학 교수 도지슨은 일반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쳤다.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수학적 상징과 퍼즐, 역설 논리, 철학적 대화, 현란한 언어 유희 등이 어울려 ‘앨리스’는 지금까지도 문학과 예술 및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 오랫동안 루이스 캐롤의 문학을 연구한 대중적 과학 작가였던 마틴 가드너는 이 책에 숨어 있는 수학적 상징을 설명하는 책을 썼다. ‘주석을 붙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다른 사람의 작품에 주석을 붙인 것에 불과한데도 무려 백만 권 넘게 팔렸다.

몇 해 전에 ‘음과 수의 판타지’라는 공연을 했었다. 음악과 수학의 오랜 상호작용, 특히 수학적 실험을 시도한 현대 음악가들의 작품을 다룬 강연 형식의 이 공연에서 우리나라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화 중에 그는 독일 유학 초기에 가드너의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나중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오페라 곡을 쓰게 됐다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이 오페라는 세계 도처에서 공연되면서 작곡가 진은숙의 명성에 기여했다.

19세기 중반은 수학에서 추상 대수 및 그에 영향받은 분야들이 퍼지던 시기인데, 수학자 도지슨은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작품 곳곳에 고전적인 산술 및 기하에 대한 애정과 유클리드의 중요성을 숨겨 놓고 있다. 원작에는 애벌레가 앨리스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크기야 어찌 됐든, 비율이 중요하니 몸의 비례를 유지해.” 유클리드 기하에서는 절대적인 크기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길이들의 비율인데, 앨리스가 원더랜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클리드 기하적으로 살라고, 즉 크기는 바뀌어도 비율은 유지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실제로 도지슨은 ‘유클리드와 현대의 경쟁자들’이라는 수학책을 본명으로 출간한 바 있다.

도입부에 앨리스가 굴로 떨어지면서 오렌지 잼을 잡는 장면은, 스페인 식민통치에 저항하던 네덜란드의 ‘오렌지의 윌리엄 공’을 떠올리게 한다. 빅토리아 시대 구교와 신교의 대립을 펀(pun)으로 묘사하는 장면이다.

이 책의 실제 인물인 앨리스 리델은 도지슨이 근무하던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처치 대학 학장의 딸이다. 성장해서 옥스퍼드 대학 학생과 사랑에 빠졌는데, 하필 왕자였다. 레오폴드 왕자는 빅토리아 여왕의 반대로 앨리스와 헤어져서 공주와 결혼했는데, 딸의 이름을 앨리스 공주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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