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나잇값을 하자

입력 2017-01-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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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쪼개지듯이 아프고 눈이 빠지는 것 같았다. 으슬으슬 춥고 온몸의 살이 다 아팠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니 A형 독감이란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서 가볍다는 증상이 이 정도인데, 예방주사를 안 맞은 사람은 어떨까 싶었다. 연말 송년 모임에도 가지 못하고 해를 넘겨서까지 헤매고 있다. 그런데 아내까지 감기에 걸려 손녀도 못 만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누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다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뿐,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을 절감한다.

회갑을 맞는 정유년이 되고 보니 육십이라는 나이가 더욱 와 닿는 요즈음이다. 옛날에는 장수했다고 경사라며 큰 잔치를 벌였던 나이다.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회갑을 바라보는 새해를 맞으니 문득 ‘내가 진정한 어른인가, 나잇값은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딸아이가 결혼을 하고 외손녀까지 얻었으니 어른이 아닌 건 아니지만 이제야 진정한 성년을 맞는 기분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이가 무슨 벼슬도 아닌데 무조건 나이부터 내세우고 젊은 사람들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화내고, 그러면서도 베풀 줄은 모르는,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남의 잘못은 그냥 지나칠 줄 모르고 ‘지적질’을 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시인할 줄 모르고 아랫사람을 쥐잡듯이 하는 사람도 있다.

감정 조절을 못하고 잘 삐치는 사람, 뒤끝이 있어서 남의 사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한 사람도 나잇값을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탐욕을 열정으로 착각하고, 나이에 맞지 않는 민망한 차림을 하고서도 본인은 패션 감각이 남다르다며 자랑을 한다. 새치기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 데서나 큰 소리 지르고, 지하철에서 술냄새를 풍기며 추태를 부리는 노인들도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생산성과 정보력을 기준으로 노인을 쓸모없는 걸림돌로 여기는 것도 연령 차별이다. 젊음에 지나친 가치를 두고, 동안(童顔) 열풍과 성형 붐을 조장하는 세태도 안타깝다. 농경사회에서는 한 마을의 어르신을 존경하는 문화가 있었다. 지혜와 연륜을 갖춘, 아랫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어른이 마을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정도면 신체적, 지적으로도 성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이 스물이면 법적으로도 성인이다. 게다가 결혼을 해서 부모가 되면 누가 어른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나이 사십, 오십을 넘겨도 철이 없는 남편, 철부지 아내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하물며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손 내밀고 사고 치고 생각 없이 말을 옮겨 자식들 간에 분란을 일으키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참 난감하다. 나잇값을 못하는 시부모나 장인, 장모를 만난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존경받는 부모는 아니더라도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최소한 듣지 말아야겠다. 지혜롭고 인자하고 진중하며 많이 베풀고 책임질 줄 아는 집안의 어른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도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평소에는 점잖고 어른 같다는 얘길 듣는 편이지만 35년을 함께 산 아내는 문득문득 자기밖에 챙길 줄 모르는 이기적인 날 본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착각’이라는 병은 중하면 중할수록 자신만 모르는 법이어서, 나도 나잇값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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