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별 걱정을 다 한다

입력 2016-05-2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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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기도

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에서

언젠가 딸이 일하는 회사 지하 커피점에서 딸을 기다리다 만난 우연한 장면이다. 모녀의 모습이 너무 경건해서 나도 책을 내려놓고 덩달아 기도에 동참한 셈이었다. 아무튼 커피는 위대하다. 단일 교역량으로는 오일에 이어 세계 2위이고 우리나라는 10위 이내의 커피 교역국이라고 한다.

1920년대쯤 커피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이래 불과 백 년 안팎에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국민 1인당 연간 400잔에 가까운 커피를 마신다니 이 정도면 커피 천국이라 할 만하다.

커피는 중독성이 있다. 중독이라는 말은 대부분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 알코올이나 니코틴 또는 향정신성 약물들이 그렇다. 그러나 사람들은 커피에 대한 중독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즐긴다. 커피나 한 잔 하자는 게 인사가 되었고 커피는 집집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커피는 그만큼 문화적이고 사회적이다.

오랜 다방커피와 인스턴트 봉지커피 시대를 지나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커피점은 도시의 목 좋은 곳은 물론 동네 골목 곳곳에서 성업 중이다. 옛 다방의 전성시대나 다름없어 보인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자가 커피 또한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다.

원두를 직접 볶고 갈아 각기 다른 향취를 골라 즐기는 호사(好事)의 분주함을 사람들은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시동이 덜 걸린 아침의 지지함이나 오후의 피로 속으로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이 스며들면 아연 정신은 깨어나고 몸은 활력을 얻는다. 검은 물의 마력이다.

그러나 전문화, 고급화되어 가는 데 따라 가격도 만만치 않아 직장인들이 점심 먹고 제대로 된 커피 한 잔 마시기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하루에 밥 두 공기를 못 먹는다고 한다. 식당의 밥 한 공기는 보통 천 원이다.

영국의 아편에 정신을 빼앗긴 중국이 전쟁 끝에 영토까지 내주었듯 우리의 살림살이에 비해 커피콩에 너무 많은 사랑을 지불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글로벌 기업들이 커피를 독점한다든가 해서 언젠가 커피전쟁 같은 게 일어나진 않을까. 모녀의 기도를 들으시던 하느님은 별 걱정 다 한다고 하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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