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주년/위기의 토종 사모펀드] 날개 꺾인 토종 PEF, 투자 약정에 자금운용 재량권 없어 성장 발목

입력 2014-10-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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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연기금 LP, 감사 압박에 고위험 PEF 펀드 투자 기피… 리스크 부담 분산투자로 자본 규모 약해 외국계에 밀려

국내 PEF(사모투자전문회사) 시장이 본격화된 지 약 10년. 한국의 블랙스톤, 칼라일을 목표로 토종 PEF들이 생겼지만 좀처럼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최근 M&A 시장에 STX팬오션, KT렌탈, 금호고속 등 매각 금액이 4000억~7000억원에 이르는 대형 매물이 나왔지만 이를 소화할 수 있는 PEF는 외국계뿐이다. 토종 PEF는 에쿼티 파트너로 들어오는 투자자(LP)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LP들이 손실 보전을 위해 약정을 맺고 투자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률에 도전하기 어렵고 자본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이처럼 본래 의미의 모험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Buy-Out(기업인수: 경영권 지분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높여 되파는 것)펀드에 정통한 PEF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PEF 발목 잡는 한국 LP들 = 토종 PEF가 자본 규모를 키우기 어렵고 Buy-Out 펀드를 조성하기 어려운 것은 국내 LP와 관련이 있다. PEF의 주요 LP는 연금공단 및 공제회들인데 이들 기금은 국내에서 ‘안전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때문에 국내 연기금들은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PEF 투자에 나서길 꺼려한다. 리스크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다.

PEF 관계자는 “연기금들이 LP로 나설 경우 메자닌 투자를 하거나 배당에서 선순위 조건을 요구한다”며 “M&A에 참여할 때도 보통주보다는 우선주 또는 후순위 대출 성격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PEF 입장에서는 부담은 커지고 운용 재량은 적어진다”고 말했다.

국내 PEF들이 조성한 펀드 중 블라인드펀드보다는 프로젝트펀드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블라인드펀드는 투자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모아 운용사(GP) 투자심의위원회에서 투자 의사를 결정하지만, 프로젝트펀드는 사전에 정해진 투자 대상에 LP 투자심의위원회가 투자 의사를 결정한다.

한 연금공단 관계자는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PEF 투자에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국내 PEF는 대부분 ‘고위험-저수익’이기 때문에 블라인드 펀드에 투자하기 꺼려한다”고 설명했다.

또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연기금들은 투자금을 한두 곳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PEF에 분산시켜왔다. 최근에는 우정사업본부가 IMM인베스트먼트에 자금을 몰아줬지만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이런 영향으로 토종 PEF가 펀드를 하나 만들면 최대 모금(펀드레이징) 규모가 5000억~6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펀드에서 올인할 수 없기 때문에 대형 PEF라도 한 곳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은 1000억~2000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렇게 모금이 가능한 곳은 토종 PEF 중 IMM인베스트먼트, H&Q AP 코리아 정도다.

결국 토종 PEF들은 자본 규모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형 딜에서는 외국계에 밀리게 되고, LP들과의 투자 약정에 묶여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자본 규모의 한계-대형 딜 소싱 난관-낮은 투자수익’의 악순환이 이어져 Buy-Out펀드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감사 두려운 LP… PEF 투자 위축시켜 =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국내 연기금이 PEF 투자를 무조건 꺼리는 것은 아니다. PEF 투자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금감사실, 감사원 등 감사기구 때문이다. 연금과 공제회 관계자들은 대체투자를 확대하는 데 이견이 없다. 기금을 운용하는 실무진들은 한 발 더 나아가 공격적으로 PEF 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내부 감사, 외부감사, 국정감사 등으로부터 문책을 당할까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연금공단 관계자는 “기금 1조원을 10곳으로 나누어 대체투자를 하면 10곳에서 모두 수익률이 나올 수 없다”며 “감사하는 측에서는 전체 수익률은 보지 않고 투자 실패 사례만 골라 책임을 물으니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에쿼티 파트너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감사하는 곳에서 전체 수익률로 기금 운용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실패 사례로 연기금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내 3대 연금공단 운용 수익률을 보면 주식, 채권, 대체투자 중 대체투자 수익률이 가장 높다. 그러나 매년 국정감사철이 되면 한두 개 실패한 투자 사례로 질타를 받는 게 현실이다.

반면 블랙스톤, 칼라일, KKR 등 외국계 PEF나 MBK파트너스처럼 외국 자본으로 운용되는 곳은 상황이 다르다. LP 대부분은 외국계 연기금으로, PEF 투자에 에쿼티 파트너로 들어온다. MBK파트너스가 코웨이, 네파 등 대형 매물을 싹쓸이한 데는 이런 LP의 역할이 컸다. 알려진 곳은 캐나다연금(CPP IB), 테마섹, 캐나다공무원연금(PSP Investment) 등 대부분 해외 연기금이다. 한앤컴퍼니의 경우 주요 LP가 ‘Fund of Funds’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도 1970년대까지는 공적 연금들이 일반 주식 투자도 어려웠지만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면서 미국 연기금들이 PEF 투자에 적극 나서게 됐다”며 “결국 감사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대체투자와 관련된 감사 문제 때문에 연기금들이 기금 운용에 제약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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