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썸 열풍’이 방증하는 것

입력 2014-09-11 11:17 수정 2014-09-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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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썸’ 열풍이 거세다. 내 주변에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썸을 타는 후배가 몇몇 있다. 물론 그들은 싱글이다. 신조어 ‘썸’은 영어 ‘섬싱(something)’의 줄임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남녀가 본격적으로 사귀기 전에 호감을 느끼는 상대방과 조심스럽게 감정을 주고받는 단계로, ‘사랑과 우정 사이’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썸과 연애의 경계는 ‘고백’이란다.

그런데 교열기자인 나에게 ‘썸’이란 단어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참 불편하다. 외래어인지 비속어인지 구분조차 애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이 은근슬쩍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이 같은 설렘 때문일까. 최근 많은 미혼 남녀들이 연애 대신 썸을 선호하고 있다. 관계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때론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피로감을 느낄 수 있는 연애와 달리 썸은 소유와 정기고는 노래 ‘썸’의 가사처럼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너’이기에 언제든지 부담 없이 관계를 청산할 수 있다. 젊은이들 나름의 ‘파경(破鏡) 회피 전략’이라고나 할까…. 신세대들이 썸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다.

‘썸’은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가 낳은 현상으로 사회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취업난, 안정적이 못한 일자리,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등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20~30대에게는 연애마저도 사치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썸을 선택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일각에선 디지털 시대의 환경적 요인과 가족해체 현상에 따른 불안심리로 썸을 추구하는 청춘이 늘고 있다고 풀이한다. 이를 방증하듯 올해 초 우리의 청년실업률은 14년 만에 두 자릿수를 넘어섰고,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저출산 국가다. 썸은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보여주는 상징적 용어이자 그늘진 단면이 녹아 있는 씁쓸한 자화상인 셈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신조어 못지않게 우리말에는 한자는 전혀 다른데 음이 같거나 비슷해 사용에 어려운 단어가 여럿 있다. 앞 문장에 나온 ‘방증’이 그 대표적 사례다. 많은 사람들이 ‘방증’과 ‘반증’을 구별하지 못해 오용(誤用)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방증(傍證)’은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진 않지만 주변의 상황 등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증거를 일컫는다. 한자 傍은 ‘곁, 옆’이라는 의미를 안고 있다. 이와 달리 ‘반증(反證)’은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않음을 반대의 근거를 들어 증명하거나 혹은 그런 증거를 뜻한다. 따라서 앞뒤에 서로 상반되는 내용이 나온다. 두 단어 모두 증거를 제시해 밝히는 일이지만 ‘방증’은 정황을 뒷받침하는 간접적 증거, ‘반증’은 반대되는 증거란 점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반드시 구분해 써야 한다. 한마디로 주변 상황을 들어 간접적으로 증명할 때는 방증을, 반대되는 직접적인 근거를 들어 논박할 때는 반증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다.

썸 문화와 관련해 자칫 잘못 발전할 경우 극단적 이기주의로 변질돼 젊은 세대들이 건강한 인간관계를 거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회가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줘 맘껏 연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정치권은 ‘썸’에 빠진 ‘3포 세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미래가 없는 잠깐의 셀렘보다는 풋풋한 고백이 넘쳐나는 연애문화가 그리워지는 초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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