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희소병’ vs ‘희귀병’

입력 2014-08-2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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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짜릿한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촌 전체가 들썩일 정도다. 미국 루게릭병협회가 루게릭병 환자에게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기 위해 진행 중인 모금운동 ‘얼음물 샤워’(아이스 버킷 챌린지) 얘기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사람이 세 사람을 지정해 24시간 안에 못할 경우 100달러를 기부하는 게 규칙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캠페인 동참자들은 샤워를 하고도 쾌히 성금을 내놓고 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머리에 얼음물을 끼얹은 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다음 도전자로 지목했다. 사실 부시는 ‘대통령다움’을 언급하며 기부금만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수표에 서명을 했는데, 그 순간 몰래 다가온 아내 로라 부시가 남편에게 얼음물 세례를 퍼부은 것이다. 페이스북에 올라간 이 영상을 보고 ‘좋아요’를 누른 네티즌 수는 100만명을 훨씬 넘어섰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기술고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네이마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타이거 우즈 등도 캠페인에 동참했다.

유명 연예인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된 우리나라에선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코치 출신으로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박승일씨가 동참해 큰 감동을 남겼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박씨의 상태를 고려해 얼음물 대신 인공 눈꽃송이를 날렸다. 박씨는 “시원하게 얼음물 샤워를 할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라는 글도 남겼다.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일깨워준 순간이었다.

루게릭병은 영국의 세계적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 아인슈타인에 비견될 정도로 학계에 큰 업적을 쌓은 호킹 박사는 21세 때 진단을 받고 1, 2년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가 내려졌지만 연구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 놀랍게도 반세기 이상 버티고 있다. 전문의에 따르면 루게릭병은 운동기능이 점차 소실되어 가고, 인지·감각기능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결국엔 정신은 온전한데 말을 할 수 없게 되는 안타까운 질환이다. 말하는 근육, 씹는 근육까지 마비돼 말을 할 수도 음식물을 삼킬 수도 없게 되고, 종국에 숨쉬는 근육까지 마비되면 인위적으로 호흡해 주는 기계를 달아야 한다. 현재 전 세계에 35만 명, 우리나라에는 3000여 명의 루게릭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관련해 언론, 방송 등에서 잘못 사용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희귀병’이다. 한자의 뜻을 풀어보면 희귀병이 어울리지 않는 조어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희귀병의 稀는 ‘드물다’, 貴는 ‘귀하다’는 뜻이다. 즉, 희귀병은 ‘보기 드물게 귀한 병’이란 의미로 표현 자체가 몹시 어색하다. 그 어떤 병도 귀할 수는 없다. 때문에 드물 ‘稀’에 적다는 뜻의 ‘少’를 붙여 ‘발병 빈도가 매우 드문 병’이라는 뜻의 ‘희소병’이 적확한 표현이다.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희귀병(귀한 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건 상처를 줄 수도 있으므로 올바른 단어 선택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이 긍정적인 결실을 맺고 있지만 일각에선 유명인들의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쏟아지고 있다. 지나치게 재미 위주로 흐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눈물로 호소하는 틀에 박힌 기부 방식엔 변화가 올 때가 됐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부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좋다. 특히 우리의 지도층도 권위를 내려놓고 현 상황에 맞는 즐거운 기부에 동참하길 바란다. 꼭 루게릭 환자가 아니라도 우리 주위엔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야 할 사람이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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