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첫사랑과 닮았습니다.

입력 2006-06-2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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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간에 사귀다 보면 남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가 가끔 있을 듯 하다. “당신은 내 첫사랑과 너무 닮았습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한 두 번 써 먹었던 말이다. 그런데 여성 입장에서는 그 말이 짜증나고 비린내 난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법도 하다. 특별한 표현을 듣고 싶은데 아주 흔한 얘기인데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 빗대서 표현하니까 기분이 썩 좋을 것 같진 않다.

비록 고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말에는 이런 뜻이 숨어있다. 남자는 첫사랑을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 이상으로 좋은 느낌을 갖는 경우도 흔치 않다. 따라서 첫사랑을 닮았다는 의미는 그만큼 당신이 좋다는 뜻을 전하고 싶은 대표문장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하는 남자는 첫사랑과 헤어진 후, 다시는 첫사랑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늘 좋은 이미지를 가진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그 환상이 대부분 깨지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깨끗한 얼굴과 순수함은 늘 그 당시 시간에 멈춰있기 때문에 수년, 혹은 수 십년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땐 이미 그 순수성을 잃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어쨌거나 첫사랑을 닮았다는 얘기는 비린내 날만큼 기분 나쁜 얘기는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적당히 다른 표현을 찾기가 어려워서 일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연애경험이 많지 않아서 다른 표현을 모르는 것일테니 그만큼 여전히 순수한 남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말 머리를 약간 돌려보면 직업이나 창업에도 첫사랑이 있다. 나의 경우, 직업의 첫사랑은 법조인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줄곧 판검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그 첫사랑에 대한 기성세대가 되고 난 후에 깨져버렸다. 몇몇 판검사와 변호사들을 만나보고 난 후에는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보는 것이 아름다워야 마음이 아름답다”라는 것이다. 판검사의 경우, 맨날 보고 만나는 사람이 범죄자들 뿐이니 은연중에 그들의 말투와 생각을 닮아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폭탄주로 대표되는 검사들의 회식은 사실은 조폭 문화였다. 짧은 인생 중에 가급적이면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해서다.

좀 다른 얘기일지 모르지만 습관이나 환경은 은연중에 보는 것에서 옮아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 부모님은 늘 다리를 떠는 것에 야단을 치시곤 했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직원 가운데 한사람이 늘 다리를 떠는 것을 보고 몇 차례 충고를 했다. 그러나 그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문제는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 스스로가 다리를 떨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조카 중에 “일단은...”이란 말을 유독 많이 쓰는 녀석이 있다. 말끝마다 “일단은...”을 쓰다보니 나중에는 짜증스런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제발 일단은 끝내고 이단으로 가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녀석은 여전히 그 말을 애용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나 역시 그 말을 따라하고 있음을 알았다. 참 허탈했다.

이렇듯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은연중 옮아가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이다. 첫사랑을 닮았다는 말이 첫사랑을 할 때처럼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답게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는 의미는 혹시 아닐까? 지금의 환경보다 훨씬 순수한...

창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 사회에 발을 디딘 사람들에게는 대체적으로 하고 싶은 업종이 있다. 나는 파괴공학과 해양학 중 택일하고 싶었다. 파괴공학은 우리나라의 한정된 땅 아래서 갈수록 고층빌딩은 들어설 것이고 다시 재건축하는 일은 다반사일테니 파괴공학은 필수적인 유망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양학은 삼면이 바다이면서도 우리는 바다를 제대로 이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특히 해수를 이용한 에너지 개발과 해수의 자원화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분야는 지금도 여전히 관심이 많다. 첫사랑이 이루지 못했기에 더욱 아름답게 남아있듯이 해양학과 파괴공학도 이루지 못했기에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상담을 하다보면 누구에게나 하나쯤 해보고 싶었던 업종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다른 업종을 얘기해 줘도 한때의 그 업종에 미련을 떨치지 못해 늘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들 가운데 직접 도전해 봤다면 아마 크게 실망했거나 아예 그런 꿈을 잊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물론 성공했다면 더 큰 만족과 성취감을 느끼며 살게 될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이루지 못한 즉, 도전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늘 가슴 한 켠에 아쉬움을 담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약간의 손실을 각오하고라도 도전했더라면 그런 아쉬움은 덜하지 않을까? 창업은 도전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업 성패를 떠나 더 크게 보면 인생에서 후회 없이 사는 방법의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은 현실에 최선을 다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꾸 미련과 현실이 비교되기 때문이다. 첫사랑과 배우자를 비교하면 당연히 첫사랑이 판정승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배우자에게 올인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사업에서 성공도 중요하지만 브로드한 개념으로 보면 인생에서도 후회가 없는 것이 좋으므로 일단 도전해 보자. 늘 가슴에 품고 여운을 갖고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래서 도전은 늘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이형석(leebangin@gmail.com)

비즈니스유엔 대표컨설턴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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