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윷놀이 속 우리말…도 긴 개 긴/백도/도나캐나

입력 2014-02-2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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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지인들과 서울 아차산에 올랐다.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이곳은 한강과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등 조망이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코스가 재미있어 자주 찾는 산이다. 그런데 이날 산에선 윷놀이가 벌어져 또 하나의 볼거리를 선사했다. 50대로 보이는 등산객 8명이 하산 후 막걸리 내기로 윷놀이를 한 것이다. 정월대보름날의 흥이 아직 가시지 않았나 보다. 다른 등산객들에게 피해를 줄까 조심하며 놀이를 즐기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정월(음력 1월)에 즐기는 민속놀이로 윷놀이가 대표적이다. 윷과 윷판, 윷말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 어린 시절 명절이면 동네 어귀에 면 단위 척사대회 프래카드가 걸리곤 했다. 척사는 ‘던질 척(擲)’, ‘윷짝 사(柶)’로 ‘윷놀이’를 의미한다.

윷놀이 중 가장 많이 오가는 말은 ‘도찐개찐’. 이 표현은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거기서 거기’라는 의미로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도찐개찐’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찐’은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언짢고 아프다’는 의미의 말 ‘찐하다’의 어간이다. 즉 ‘거기서 거기’란 뜻과는 전혀 다른 말인 셈이다.

‘윷놀이에서 자기 말로 남의 말을 쫓아 잡을 수 있는 거리’를 뜻하는 말은 ‘긴’이다. 따라서 둘 또는 여럿 사이에 큰 차이가 없거나 ‘도토리 키재기’란 표현의 바른 표기는 ‘도 긴 개 긴’이다. ‘도진개진’, ‘도낀개낀’, ‘도낑개낑’ 역시 올바르지 않은 표기다.

‘긴’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 좀 생뚱맞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난다 긴다 하는 이공계 천재들이 다 모였다.” 이 문장 속 ‘긴다’가 앞서 살핀 바로 그 ‘긴’이다. ‘난다 긴다’를 ‘날아다닌다, 기어다닌다’로 여겼다면 큰 오산이다. 나는 거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어다니는 게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난다 긴다’의 ‘난다’는 윷놀이에서 말이 윷판을 다 돌아 나는 것이고, ‘긴다’는 긴 거리에 있는 앞선 말을 잡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난다 긴다 하는 사람’은 원래 ‘윷놀이를 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후 그 뜻이 확장돼 ‘남보다 재주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윷놀이와 관련된 말로 ‘빽도’도 많이 쓰인다. ‘빽도’는 윷 가운데 하나를 정해 뒤쪽에 특정한 표시(◎, × 등)를 하고 그 윷이 뒤집어져 도가 나오면 한 칸 앞이 아닌 한 칸 뒤로 가는 규칙으로, 특별한 재미가 있다. 그런데 ‘빽도’는 바르지 않은 표기이므로 ‘백도’로 써야 한다. 영어의 ‘백(Back)’에 ‘도’가 더해져 생긴 말이기 때문이다. ‘Back’의 바른 외래어 표기는 ‘빽’이 아니라 ‘백’이다

내친김에 윷놀이에서 유래된 말 ‘도나 개나’도 살펴보자. 이 말은 ‘도찐개찐’만큼이나 잘못 쓰이는 표현이다. 일부 방송에선 ‘되나캐나’, ‘되나깨나’ 등으로 자막을 내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하찮은 아무나 또는 무엇이나’의 뜻을 지닌 말은 ‘도나캐나’로 표기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사업이 유망하다고 하니 도나캐나 뛰어든다” 등으로 활용된다. ‘도나캐나’는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소치동계올림픽 1000m 결승에서 ‘불꽃 질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러시아의 국민영웅이 된 빅토르 안(29·안현수)이 연일 화제다.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쇼트트랙의 파벌 문제 때문이다. 학연보다 더 무서운 ‘에이스’와 ‘비(非)에이스’간 파벌이었다. 빙상계에 대한 비난의 시선이 뜨거운 가운데 다른 종목 관계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스포츠계는 물론 어느 사회, 어느 국가에 파벌과 편가름이 없겠는가. 유도, 태권도, 펜싱, 테니스 등의 종목도 파벌 문제에 있어서 도 긴 개 긴, 오십보백보다.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으로 우리 스포츠계에 비리와 파벌이 발붙일 수 없는 시스템이 하루빨리 구축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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