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야스쿠니에 집착하는 일본 -배수경 온라인뉴스부장

입력 2013-12-31 10:28 수정 2013-12-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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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7월,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히로히토 제124대 일왕(쇼와 천황)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부한 속내가 담긴 메모가 공개된 것이다.

‘도미다 메모’로 불리는 이 메모는 고인이 된 도미다 도모히코 전 궁내청 장관이 생전에 작성한 것이다. 1988년 4월 28일 작성된 메모에 따르면 히로히토 일왕은 A급 전범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내고 참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A급 전범이 합사된 곳을 참배하면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히로히토 일왕은 패전 후 여덟 차례에 걸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다가 1975년 11월 21일을 끝으로 참배를 중단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야스쿠니의 의의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쇼와 천황"이라며 "천황 개인의 생각을 넘어선 무게가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A급 전범들의 만행을 배후에서 목도한 인물이다. 중국·동남아시아 침략을 묵인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대외 침략 전쟁을 도왔다. 심지어 그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하자 자신의 황위 박탈을 면하기 위해 미국 등 11개국으로 구성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와 유착관계를 유지하면서 '꼭두각시 천황'이라는 오명도 불사했다.

이런 히로히토 일왕이 A급 전범의 야스쿠니 합사를 반대한 것은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줄 법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신격(神格)시 되어온 일왕의 의중은 깡그리 무시됐다. 특히 87~89대 총리를 역임하며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10년'의 늪에서 끌어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정권 유지를 위해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 재임 기간 내내 주변국과 외교 마찰을 일으켰다.

고이즈미 정권에서 관방장관을 지낸 아베 신조 현 총리는 한술 더 떴다. 아베 총리는 2006년 A급 전범의 야스쿠니 합사 논란이 한창일 당시, 연합국이 일본의 2차 대전의 중죄인들을 재판하기 위해 연 1946년 도쿄재판을 언급하며 "연합국에 의해 도쿄재판에서 7명이 사형당했다. 우리가 이들을 주체적으로 재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다"라며 A급 전범에 대한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그로부터 7년여가 흐른 2013년 12월26일,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해 또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미국·중국의 맹렬한 비난이 이어지자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전범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며 "두 번 다시 전쟁으로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는 시대를 만들기 위한 결의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본 정부의 유력 인사들이 개인적인 신앙과 정치적 영합 등을 위해 화학무기 사용과 성 노예 등 전쟁 당시의 잔혹 행위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평화헌법을 표방하면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일본의 주장만큼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이같은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일본은 주변국과의 전략적 호혜관계도 다 끊어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다.

원래 야스쿠니 신사는 관군편에서 싸우다 희생된 일본 서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도시설 '쇼콘샤(招魂社)'가 전신이다. 특히 야스쿠니는 일본 전역에 세워진 쇼콘샤 가운데서도 왕족들이 직접 납폐하는 으뜸 신사였다. 하지만 군부 출신의 우파 성향이 강한 마쓰다이라 나가요시가 신사의 총책임자가 된 후 1978년 A급 전범 14명을 비밀리에 합사하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변질됐다.

A급 전범의 야스쿠니 합사를 죽을 때까지 반대한 마쓰다이라의 전임자 쓰쿠바 후지마로는 생전 "원래 야스쿠니는 숲이 있는 즐거운 장소였는데 전쟁 중 군국주의 탓에 이상하게 변했다. 옛날 쇼콘샤 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모든 전몰자들은 일왕을 위해 죽음으로써 생전의 잘잘못에 상관없이 신이 되어 후손에게 예배를 받는다. 일본인들은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2014년 새해를 맞아 신사에 와서 만사형통을 기원한다. 이는 일본이 자국민에게 저지른 또다른 기만의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하루속히 전쟁 책임을 시인하고 관련국에 사죄, 자국민에게 야스쿠니의 본모습을 되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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