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그림이 있는 골프]아름다운 골퍼, 고우영

입력 2013-05-0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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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삽화 방민준(골프칼럼니스트)

주위에서 골프가 없으면 정말 못살 것 같은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바둑이나 당구, 포커를 처음 배울 때 잠자리에 들어서도 천장에 그려지는 바둑판이나 당구공, 카드가 눈에 선해 잠 못 이루듯 골프에 빠진 사람들도 다를 바 없다.

잠을 청하지만 천장에 그려지는 코스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 해지는 고통을 겪는다. 구력 20년이 지났는데도 라운드 전날 밤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잠을 설치는 골퍼도 의외로 많다.

골프 사랑으로 말하면 故 고우영 화백(2005년 숙환으로 타계)을 따를 사람이 있을까 싶다.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일지매, 십팔사략 등으로 장안의 지가를 올렸던 그는 사실 40대 중반까지 골프의 골자도 몰랐다.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겼던 그는 골프를 하라는 주위의 끈질긴 권유를 철저히 외면했다. 지인이 새 골프채를 사서 차 트렁크에 실어주었는데도 6개월이나 지나 골프백을 열어보고 골프채가 14개나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정도다.

“잘 아시잖아요, 내가 안 해본 것이 없다는 거. 낚시다 사냥이다 스킨스쿠버 다이빙이다 모두 전문가수준 이상으로 광적으로 좋아했잖아요. 이런 취미생활 없이 못살 줄 알았지요. 아, 그런데 골프를 배우고 나니 그런 것들 하고 거리가 멀어지더니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지데요. 모든 관심과 화제가 골프로만 모아지는 거예요. 참 묘하지요?”

골프사랑에 빠진 사연을 털어놓던 그는 빙긋이 웃었다. 그 웃음은 ‘아마 내 골프사랑을 짐작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하고 말하고 있었다.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이 만화가였던 형님의 작업을 어깨 너머로 보고 배워 동양 고전을 소재로 한 만화의 일가를 이룬 그는 골프 역시 매우 늦게 그것도 독학으로 배웠지만 교과서적인 우아한 스윙과 완벽한 매너와 에티켓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서로 골프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는 순식간에 ‘고우영 화백 애호가들’ 중 한 사람이 되었고, 내 골프에세이의 삽화를 공짜로 그려주고 나서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죽이 맞는 골프메이트로 변했다.

그와의 라운드는 정말 배울 것이 많았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완벽한 스윙을 구현했고 동반자들을 철저하게 배려했다. 무궁무진한 화제와 풍자, 해학, 재치가 넘치는 화법으로 동반자들을 즐겁게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골프 열정이었다. 골프약속이 있는 주면 만날 때마다 “주말이 기다려집니다. 우리 짱짱하게 붙어봅시다”며 흥분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라운드 당일 새벽잠을 설쳐 충혈 된 눈으로 나타나곤 했다. 골프를 시작한 이후 한 번도 라운드 전날 흥분하지 않고 편안히 잠을 잔 적이 없다고 했다.

나도 고 화백의 전철을 밟고 있다. 골프가 뭐 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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