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사악한 식물의 유혹- 안영희 중앙대 교수

입력 2013-04-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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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TV에서 비춰지는 광고도 빨라서 좋다는 내용이 많다. 이런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안식처를 찾고 있다. 최근에 관광, 스포츠 등과 같은 레저산업의 급팽창이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에 도박, 마약 등과 같은 불건전한 쾌락추구 현상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매스컴을 통해 마약사범에 대한 뉴스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람이 대마초를 피웠다는 뉴스에서부터 프로포폴의 불법 투약이 이루어졌다는 뉴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다.

종류를 불문하고 마약류는 중독성과 부작용이 심각해 각 나라에서는 법으로 취급 및 관리를 규제하고 있다. 강한 진정 작용을 지니고 습관성이 있어 중독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마약류의 원조는 아편, 코카인, 대마초, 담배 등과 같은 식물에서 유래한 물질일 것이다. 사람들은 역사 이래로 식물에 의존해 삶을 영위해 왔다. 쌀이나 밀, 보리, 감자 등과 같이 주식으로 삼는 곡물류는 물론이고 모시, 마와 같은 의류 섬유를 비롯해 커피, 차 등의 기호식물과 장미, 백합 등과 같은 관상식물 등도 모두 식물이다. 식물이 지닌 가치를 발굴하고 이용 방안을 찾아온 것이 어쩌면 우리가 이룩한 문명의 한 단면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에는 식용, 약용, 관상용, 섬유용, 공예용 등과 같은 유용 자원식물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식물들도 있다. 투구꽃, 천남성, 대극 등과 같이 사람의 목숨을 해칠 수도 있는 독성식물을 포함해 양귀비, 삼, 코카나무, 담배 등의 마약성 식물들도 있다. 원래는 이들 식물이 지니고 있는 알칼로이드(alkaloid)를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건전하게 사용되었던 것들이다. 식물의 알칼로이드는 세균의 침입을 막거나 곤충과 같은 포식자에게 식물체가 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식물체가 합성하는 방어물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식물들을 쾌락의 수단으로 이용하게 됨으로써 졸지에 마약식물이라는 오명이 덮어씌워지게 되었다. 결국 사람에게 해악을 주는 사악한 식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양귀비(Papaver somniferum; 罌粟)이지만 허가를 받지 않고 재배할 경우에는 법으로 제재를 받고 무참하게 잘려버리는 처지로 전락되고 말았다. 양귀비에서 채취하는 아편은 중독성이 매우 강해 재배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아편은 약물이 다양하지 못했던 과거에 극심한 통증을 줄여줄 수 있는 뛰어난 진통제로 사용되었던 약용식물이다. 양귀비의 종명인 ‘somniferum’은 ‘잠들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로마 신화에서 잠의 신인 솜누스(Somnus)가 딸을 잃고 괴로워하는 풍작의 여신 케레스(Ceres)에게 잠이 들 수 있도록 아편을 주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더운 여름철 시원한 삼베 옷의 재료로 이용되었던 삼(Cannabis sativa; 大麻)은 고대에서부터 줄기의 껍질을 벗겨 의복을 만들기 위한 섬유식물로 이용했던 식물이다. 또 종자는 기름을 짜거나 향신료로 흔히 사용했던 식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리한 인간은 삼이 지닌 진통, 진정작용을 마약으로 그릇되게 이용하면서 삼도 역시 나쁜 식물의 범주에 들게 되었다.

심각한 중독성으로 인해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이런 악한 식물들이 저지른 죄악은 실로 막심하다. 매년 마약성 식물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는 물론이고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폐해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손실은 매우 크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체내에서 알칼로이드를 만든 것뿐인 이들 식물에게 과연 죄가 있는 것인가. 원래는 이로운 식물로 평가받던 존재가 인간의 그릇된 사용에 의해 하루아침에 사악한 존재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식물들이 있다. 그 가운데는 다양한 용도로 우리에게 활용되고 있는 종류들도 있고 앞으로 잠재적인 가치가 개발될 수 있는 종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식물들도 인간의 그릇된 오용에 의해 한순간에 사악한 식물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고도로 산업기술이 발달하고 있고, 그에 따라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 인간에게는 더욱 크고 많은 스트레스가 엄습할 것이다. 인간의 빼어난 지혜를 활용해 건전한 방향으로 이와 같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죄 없는 식물에게 누명을 씌우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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