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준구 "'미운 오리 새끼'가 내겐 기적의 시작"

입력 2012-09-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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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눈망울에 까치 머리 그리고 집 나온 고등학생이 매면 딱 그럴듯한 커다란 등산용 가방을 맨 채 성큼성큼 들어온다. 그 커다란 눈망울로 두리번거리다가 눈이 마주쳤다. 성큼성큼 뛰어와 우렁찬 목소리로 꾸뻑 인사를 하며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김준구입니다.”

정확하게 김준구와의 만남은 두 번이다. 앞선 설명은 영화 ‘미운 오리 새끼’ 개봉 전인 지난달 초. 그리고 두 번째는 개봉 후인 지난달 말이다. 두 번다 느낀 점은 딱 한 줄이다. ‘이 친구 참 정신이 없다.’

좋은 뜻으로 해석해보자. 참 에너지가 밝은 배우다. 첫 만남에서 김준구에게 느낀 점은 정제되지 않은 투박함이었다. 좀 더 날 것의 잣대를 대면 그에겐 ‘미운 오리 새끼’가 있다. 김준구가 곧 ‘미운 오리 새끼’며 유명 영화감독인 곽경택의 20년 전 모습 그대로 인 셈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곽경택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를 그린 영화다.

김준구는 “유명한 감독님이신 것은 알았는데, 솔직히 만나서는 큰 느낌은 들지 않았다”면서 “‘기적의 오디션’ 찍을 때도 그냥 편하게 대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이놈 뭐지’라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내가 원래 성격이 너무 낙천적이라 그렇다. 푸핫”이라며 웃는다. 그 웃음소리에 놀라자 “아, 죄송하다 푸우흣”이라며 다시 웃는다. 이 배우, 심하게 낙천적이다. 옆에 있던 영화 홍보사 관계자의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이제 데뷔를 목전에 둔 상태라 매니저 없이 홀로 언론사 인터뷰를 소화하고 있었다. 영화 홍보사 직원 도움으로 인터뷰 전 주의할 점도 미리 수업 받았단다. 하지만 별 소용없어 보인다. 안절부절못하는 홍보사 직원을 한 번 쓱 본 김준구는 “내가 웃긴가? 흐흐흐”라며 다시 개그 모드를 켰다. 인터뷰가 편하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은 불길한 예감이었다.

너무나 심하게 낙천적인 모습이었다. 장단점이 있을 듯했다. 이 질문에 김준구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시원시원했다. 그는 “낙천적이라 스트레스가 없다. 난 맘먹으면 무조건 된다는 주의다.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고 본다. 내가 배우가 된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라고 본다”며 얼굴에 힘을 주고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내말 맞죠’란 행동이었다. 참 귀여운 구석이 있는 배우다.

생짜 신인 배우로서 촬영장의 분위기가 무서울 법도 했을 텐데.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절대 아니다”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리고 다시 아주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 맞다. 힘든 거 있었다”며 박수를 짝 친다. 막힘없고, 거침없는 그의 낙천적 성격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곽경택 감독의 불호령이 기억나서인가. 김준구는 순간 얼굴을 찡그리며 기억하기 싫다는 표정이다.

그는 “내가 지금 보이는 것처럼 활달한 성격이다. 촬영장에서도 감독님은 내게 정말 좋은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그런데 정말 딱 한 가지 죽을 맛이었던 게 있다”면서 “감독님이 엄포를 놓은 게 있는데 ‘절대 웃지 말라’는 것 이었다”며 다시 얼굴을 찡그린다. 정말 힘들었나 보다.

그와의 인터뷰 전 만났던 곽 감독의 말을 빌려보자.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만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카메라 앞과 뒤 어디에서나 펄떡였다. 좀 죽여줄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내가 좀 죽여 놨더니 정말 죽어가더라. ‘이 친구 잘못하다 우울증 걸리겠구나’ 싶을 정도였으니. 허허허.”

그를 발굴한 곽 감독조차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 낙천성은 영화에서도 오롯이 묻어나왔다. 김준구가 연기한 ‘미운 오리 새끼’의 ‘낙만’은 우울함 그 자체다.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을 놔 버린 아버지, 이혼 뒤 미국으로 간 어머니, 6개월 방위 생활과 모질게 괴롭히는 고참들. 1987년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 그에겐 돌파구가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김준구는 자신의 성격대로 ‘밝은 낙만’을 그려냈다.

김준구는 “낙만이의 가정환경을 보면 불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낙만이가 꼭 그럴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불우한 환경을 탓하는 낙만이 아니라 그런 환경 속에서 밝은 심성을 유지해 나가려 노력하는 낙만이가 맞다고 생각했다”고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 어리바리한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낙천성도 지우개로 지웠는지 쓱하고 없어졌다. ‘의외로 진지한 모습도 보인다’고 놀라자 “어, 그런가? 내가?”라며 다시 풀어졌다. 역시 그 모습이 김준구였다.

‘낙천’으로 똘똘 뭉친 김준구에게 의외의 모습은 또 있다. 미대생이었단다. 미술은 가만히 앉아서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내가 이래봬도 한 그림 한다. 그림 그릴 때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젠 연기가 더 좋지만 말이다”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핸드폰을 불쑥 내밀었다. 핸드폰케이스에 그려진 멋진 용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그렸단다.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김준구는 “그림도 잘 그리고 또 운동도 꽤 한다. 사실은 액션 배우가 꿈이었다. 정말 멋진 액션 배우가 되고 싶다”며 폼을 잡았다. 중국 출신 액션 배우 견자단이 롤모델이었단다.

막연히 꿈꾸던 배우가 되고 싶단 생각에 무작정 군에 입대했다. 배우 데뷔 후 군 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 같아서 먼저 해치웠단다. 제대 후엔 연기 아카데미에 들어가 연기를 배웠다.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한 지상파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서 ‘실험맨’으로 활동한 이력도 공개했다. 그렇게 반 백수로 지내는 모습에 어머니가 학교부터 졸업하라고 엄포를 놓으셨단다. 그렇게 학교로 돌아갔고 4학년 때 ‘기적의 오디션’에 도전장을 던졌다. 프로그램 제목대로 그에게 기적이 왔다.

그는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행운아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누구에게나 가능한 행운이다. 그 꿈을 버리지 말고 꼭 붙잡고 한 발짝씩 나아가라. 그러면 누구나 백조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그 백조가 되기 위해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멈추지 않고 걸어나갈 것이다”며 힘주어 말했다.

배우 김준구의 끝 모를 낙천성, 그 끝에 숨어 있는 배우로서의 잠재력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충무로 배우 발굴의 장인’ 곽경택이 인정한 ‘미운 오리 새끼’ 아닌가. 이 배우 확실히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영화를 보면 분명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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