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기업의 습작’을 다시 들으며

입력 2012-05-24 09:48 수정 2012-05-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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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희 지경부 기술표준원 주무관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내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기억의 습작’(1994)의 일부입니다. 최근 영화 ‘건축학개론’에 삽입되면서 거의 20년 전의 곡인 ‘기억의 습작’을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중·고등학교 때 음악 좀 듣네 거들먹거리고 싶을 때 언급하곤 하던 전람회지만, 90년대가 한국 대중가요의 황금기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전람회의 음악은 당시에도 꽤나 인기가 있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기억의 습작’이 반가운 것은 이처럼 당시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영화 ‘건축학개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속엔 당시의 음악, 패션,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어설프기만 했던 ‘어린(혹은 젊은) 날의 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든 것은 저만의 경험일까요? 귀엽고 한편 답답하기도 한, 그때의 나를 바라보며 깔깔거리다가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시간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이미 완벽한 옛날이 되어버린 ‘그때’를 만나는 일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아직 한창인(줄 알았는)데 어느새 추억(해야)하는 세대가 된 느낌이 들어 조금은 슬프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테이프로 기억의 습작을 들었던 제가 유튜브로 기억의 습작을 다시 듣는 일도, 성숙한 척하며 ‘기억의 습작’을 듣던 제가 이젠 늙기라도 한 듯 그때의 나를 바라보는 일도, 아직은 낯설기만 합니다.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너무 오래 산 느낌이랄까요.

의연히 받아들이기에 세상은, 세월은, 너무 빠르기만 합니다. 인간은 추억으로 산다고들 하지만, 저는 아직 추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합니다. 갑자기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과거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어쩌면 답은 다시, 영화 ‘건축학개론’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택하는 승민과 서연에게,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도 현재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 사람은 결국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기억하고 살려고 노력하는 말 중에 “모든 일 하나하나에 관해서 행해지는 '너는 이것이 다시 한 번, 또는 수없이 계속 반복되길 원하느냐?”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니체의 ‘즐거운 지식’에 나오는 말입니다. 니체의 말대로라면, ‘기억의 습작’이 다시 주목을 받는 일도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좋은 노래는 거의 20년이 지나도 과거가 아닌 ‘지금’ 좋은 노래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니까요. 좋은 것은 어쩌면, 언제든 무수히 반복되어 다시 현재가 되어도 좋은 것일 테니까요.

저도 아직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는 현재를 사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언제가 제 마음이 지쳐갈 때, 제가 살아온 현재가 다시 찾아와 미래의 제게 위로가 되어 주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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