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꽃은 폈지만, 시장에 봄은…

입력 2012-04-18 07:54 수정 2012-04-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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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신 사회생활부장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결국 여의도 윤중로 벚꽃이 제때 피질 않았다.

여의도 샛강을 따라 하얀 목련은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봄의 전령사 벚꽃은 햇볕이 잘 드는 뚝방길을 따라 조금 꽃망울을 열었을 뿐, 조금만 그들이 지는 곳은 아예 꽃봉오리도 피어오르지 않는 벚나무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퇴근길 안양천 뚝방길을 따라 심어진 벚나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여의도에서 11-1번 버스를 타고 경인로를 지나 서부간선도로를 거쳐 광명교로 올라서자마자 맞이하는 안양천 벚나무는 이맘때 즈음 밤이면 가로등 빛을 받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그런데 올해는 벌써 4월 중순을 지나고 있음에도 가로등 사이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운동장 주변으로 심어진 벚나무를 생각해내곤 학교에 있는 벗에게 문자를 넣었다. ‘벚꽃이 피었나.’ ‘잠깐 피었다 졌네.’ 그곳은 이미 꽃잎이 떨어졌단다.

벚꽃이 흐드러질 때 몇몇 선후배와 모교 학교 잔디밭에서 벚꽃을 즐기며 난장을 벌이자 약속을 했지만 지켜지지 못했다. 벚꽃은 불현듯 만개했다, 불현듯 사라졌다고 한다.

한순간이다. 벚꽃이나 목련이나, 한순간에 피고 진다. 그럼에도 매년 이맘때 즈음 꽃 기다리는 일을 습관처럼 반복한다.

총선이 끝났다.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고, 여당이 의석 과반을 차지했다. 기업의 처지에서 보면 19대 국회를 어느 당이 장악하든 희비가 엇갈릴 일은 없다.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강도만 다를 뿐 하나같이 재벌·대기업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재벌이나 대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자체도 문제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지는 더 의문이다.

여기저기서 ‘기업 하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가장 걱정이 큰 곳은 소비생활과 밀접한 유통업계다.

당장 새누리당의 재벌개혁 분야 공약을 보면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가 지방 중소도시에 신규 진출하는 것을 5년간 금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민주통합당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현행 최장 2일에서 4일로 늘리고 영업금지 시간도 현행 ‘오전 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에서 ‘오후 9시에서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약이 모두 현실화되면 유통 대기업은 사실상 회사를 더는 성장시킬 여지가 없게 된다.

그런다고 재래시장이나 골목상권이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다. 골목상권의 적이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이어야 하는 것인지도 명확치 않다.

집앞 광명마트에서 햇반 200g짜리 1개의 가격을 1500원에서 800원으로 내렸다. 당분간 파격할인을 한다고 한다. 얼마전 바로 5~6m 대각선 거리에 이사온 럭키슈퍼하고 경쟁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게 주인장 얘기다.

현대화된 재래시장인 광명시장은 의류를 주로 파는 쇼핑센터와 이마트식품관이 붙어 있다. 이미트식품관이 들어올 때 상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피켓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몇년이 지난 지금, 광명시장은 사람이 가로질러 다니지 못할 정도로 붐빈다.

쇼핑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건물주인이 수시로 바뀌고, 매장이 번개불처럼 들어왔다 빠졌다를 반복하던 이 쇼핑센터는 이마트식품관이 들어선 이후 제법 사람이 늘었고 활기도 있다.

킴스클럽마트가 들어선 철산상업지구의 쇼핑센터도 상황은 같다. 건물주가 이랜드로 바뀐 탓도 있겠지만, 수년간 애물단지로 황량한 기운이 감돌던 이 쇼핑센터도 요즘엔 손님이 바글거린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어차피 공약(公約)이라는 게 공약(空約)이었던 적이 많은 만큼 이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겠지만, 지키지 않아야 할 것을 지킬 필요는 없다.

어차피 정치인의 인기라는 게 벚꽃이 피고지듯, 한순간에 사라지는 계절꽃과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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