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내 취미의 진정성을 찾아서

입력 2012-03-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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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우리투자증권 과장

내 나이 올해로 40이니 불혹(不惑)이라.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은 없는 나이이다. 회사생활도 10년째라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어느새 집에는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이 아빠가 퇴근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회사에서는 파트장으로서 맡은 책무를 다하느라 정신없고,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이 참새새끼마냥 입을 벌리며 내 얼굴만을 쳐다보니, 세상 어딜가나 쉴 곳이 없다.

나만 그런것인가?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푸념뿐이니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아가기는 참으로 힘들기만 해 보인다.

김훈 선생이 “남자의 숭고한 임무는 처자식 먹여살리는 것이다.”라고 일갈하셨으나,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퇴근길에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며, 내 삶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고민하게 되니, 참으로 낙이 없다.

대학시절, 남들 다 사귀는 여자친구를 나만 못 사귀던 까닭에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우연히 읽게 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보면, 남자는 너무나 힘들 때 도망가고 싶은 동굴이 하나 있다고 한다. 술이던 담배이던 어딘가 부딪혀 깨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들어갈 수 있는 돌파구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니, 내 돌파구, 나의 동굴은 “레고 블록 만들기”로 조촐하게 시작하였다. 이 나이에 맞는 취미인가? 하고 생각도 해보지만, 가끔 하나씩 구입하여 만들어가는 재미도 쏠쏠하고, 아들과 함께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허나, 무어든 과하면 독(毒)이 되는 법! 레고블럭을 만들던 취미는 레고社의 단종정책덕에 모아두면 가격이 오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둘씩 구입하는 수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베이, 야후 재팬 등 해외사이트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밤에도 한두번씩 잠에서 깨어 컴퓨터 앞에 앉아 희귀품목이 올라왔나 검색하기 바쁘고, 포장을 뜯어 같이 만들자는 아들녀석은 혼내기 일쑤이다.

어디, 레고 뿐이던가? 평일에 회사일에 바쁜 죄책감에 주말은 가족들과 기분좋게 대자연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보내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된 캠핑은 점점 고가의 장비수집이라는 주화입마에 빠져들게 되어, 캠핑을 시작하는 초심자가 장비를 물어보면 히말라야 등반급의 장비들의 품목을 술술 입에서 풀어나가며, “돌아가지 말고 한번에 가라”고 조언하는 장비 예찬론자에 이르게 되었다. 처음 캠핑을 시작할때만 해도 직장동료, 선후배들과 미리 날짜를 잡고, 캠핑장비를 손질하고, 이번에는 어떤 음식을 해먹을까 하던 고민은 레고와 마찬가지로 캠핑장비 수집病에 걸렸다는 아내의 핀잔을 들을 정도로 중증 수집병에 걸렸으니 아뿔싸..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던차에 얼마전 우리 부서로 새로 발령받은 옆자리 동료의 취미는 사진촬영이다. 당연히 고가의 전문가급 DLSR을 가지고, 종류별 최고급의 렌즈와 장비들을 가지고 있을줄 알았으나 얼씨구? 이 친구의 카메라는 콘탁스 T2라는 똑딱이 카메라 달랑 하나뿐이다. 점심 먹으러 갈 때나 외근을 나갈 때에도 틈틈이 사진을 찍고, 잘 나온 사진은 필름을 스캔해서 파일로 주거나,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 선물로 주는데 의외로 그럴듯해 보인다.

이 친구의 지론은 평생 가지고 갈 친구로 사진을 선택했는데, 고가의 장비는 무거워서 큰 맘 먹지 않으면 들고 나가기도 어렵고, 또 장비에 구속될 수 있어 자그마한 장비를 선호한다는 말을 듣고 나니 그 동안 무언가 잘못되었다 느끼면서, 이제야 장비에만 미친 내 모습에 빨간색 경고등이 울리는 기분이다.

도대체 나의 동굴, 나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내가 정말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는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머뭇거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들을 할 수 있는 장비와 관련 상품들만 사들였을 뿐 실제로 열심히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 취미 하나 있어야겠다는 조바심이 아닌, 천천히 평생의 친구로 삼을만한 취미를 찾아보아야겠다. 우선 주문해 놓은 캠핑장비를 받은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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