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돈 냄새에 짓눌린 영화 '마이웨이'

입력 2011-12-1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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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 시장에서 통용되던 ‘블록버스터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강제규 감독의 신작 ‘마이웨이’는 대단했다. 순 제작비 280억 원, 마케팅비용 포함 300억 원이란 ‘돈의 화력’은 분명했다. 당분간 ‘규모의 영화’로 따져 ‘마이웨이’를 능가할 영화는 불가능 할 것 같다. 문제는 돈 냄새가 너무 컸다. 때문에 사람 냄새 묻혔다. 결국 영화 전체가 껍데기 휴머니즘으로 전략한 꼴이다. 전쟁 영화에서 사람 냄새가 빠지니 바람만 빵빵한 풍선이 됐다. 흡사 태평양 한 가운데 풍선 하나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마이웨이’는 한국형 전쟁 영화의 새 장을 연 강 감독의 전작 ‘태극기 휘날리며’(2003)의 확장판에 가깝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의 주인공 ‘진태’나 ‘마이웨이’ 속 준식은 어딘지 닮았다. 같은 배우, 같은 소재, 비슷한 캐릭터가 주는 익숙함이 우선 마이너스다. 현재→과거→현재로 이어지는 시점 이동도 이미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본 형식이다. 사건 속 반전도 우연적 요소가 너무 많다. 스토리 동력을 떨어트리는 약점이다.

영화의 주된 무대는 2차 세계대전. 전쟁 뒤 런던올림픽. 누군가의 뒷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올림픽 마라톤 선수다. 이름은 김준식(장동건). 결승선을 향해 폭발적인 스퍼트를 내며, 시간은 과거로 흘러 1930년 일제 강점기 치하 조선의 경성. 도쿄에서 할아버지가 사는 경성으로 이사 온 타츠오(오다기리 조)는 할아버지 집안일을 돕는 집사 아들 준식과 운명적 대면을 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두 사람은 청년이 될 때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승패를 주고받는다. 그러던 중 준식의 아버지 실수로 타츠오 할아버지가 사망한다. 그 일로 준식 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불구가 된다. 이후 철천지원수가 된 두 사람은 사사건건 대립한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린 준식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다. 이어 전쟁터에서 타츠오와 운명적 대면을 다시금 한다.

‘마이웨이’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전장의 극한을 스크린에 담아낸 강 감독이 7년간 참아온 연출 욕구를 폭발시키듯 사실감 극대화에 주력한다. 노몬한 전투 장면에선 제작진이 제작해 실제 운행이 가능하다는 탱크가 뿜는 포화로 군인들의 살점과 팔 다리가 떨어져 스크린에 흩날린다. 사실감을 넘어 섬뜩할 정도다.

일본군 포로를 실은 시베리아행 열차 장면은 어떤가. 정교함을 넘어 실사를 의심케 할 정도이기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전북 새만금 401㎢ 지역에 세운 ‘독소전’ 세트는 유럽 및 할리우드가 만든 2차 세계대전 영화의 미장셴과 견주어도 그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있을 정도다. 하이라이트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신은 유럽 라트비아 현지에서 약 1달 간 공을 들인 시퀀스다. 이 부분 제작비만 무려 300만 달러(한화 약 35억원)가 들었다. 일반 상업 영화 한 편 제작비가 고스란히 투입됐다.

러닝타임 145분 동안 화면에서 펼쳐지는 장면 장면이 한국영화의 한계점으로 여겨진 ‘규모’와 ‘사실감’을 비웃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두 시간 반에 가까운 상영 시간을 받쳐 줄 스토리가 형체뿐이다. 그나마 형체뿐인 스토리도 다시 4개 단락으로 가지런히 줄을 세워놨다. 기승전결 혹은 단계별 폭발력으로 관객들의 감정을 뒤흔들어야 할 스토리가 이른바 ‘병렬구조’로 맞춰져 버렸다. 빠른 장면 전환 대비 스토리 동력 자체에 힘이 부족하다.

주인공 준식이 위기시마다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일종의 전환 장치도 자연스럽기 보단 강압에 가깝다. 때문에 초반 사건 이후 전환 시점이 예측될 정도로 구조상의 허술함이 보인다.

평면적 캐릭터도 약점이다. 강 감독의 전작 ‘태극기 휘날리며’는 진태(장동건)의 감정 변화에 집중해 관객들의 이입을 유도했다. 하지만 ‘마이웨이’는 포커스가 인물이 아닌 사건에 맞춰졌다. 심지어 그 사건 안에 인물들을 억지로 구겨 넣은 모양새가 강하다. 결국 복합적인 내면을 지닌 타츠오가 압착기에 눌린 듯 후반부로 갈수록 밋밋해 진다. 결국 준식과 타츠오의 관계 변화에 설득력을 잃게 만든다.

물론 관계 변화를 짐작케 하는 요소가 영화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너무 강한 미장셴 묻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한 향수 자극이다. 같은 시점 이동, 그리고 같은 감독과 같은 배우는 관객들에게 ‘유사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밖에 한중일 ‘쓰리 톱’ 중 한 명인 중국 여배우 판빙빙의 어이없는 출연 분량과 캐릭터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반면 김인권이 맡은 ‘종대’의 경우 삶의 회오리 속에 점차 스스로를 무너트리는 모습이 사실적이다. 개봉은 오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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