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물가, 그리고 두더지 게임

입력 2011-07-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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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 수석부국장 겸 산업1부장

20년쯤 전, 경제부총리와 부산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각계각층의 민주화 요구가 거셌고, 노동계의 불만이 한꺼번에 표출되던 때였다.

경제부총리와 노동부 장관은 부산지역 노동계와 노사정 간담회를 갖고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부산을 방문했고, 기자를 비롯한 경제기획원 출입기자들이 현장취재를 위해 동행했다.

당시 부산은 교통지옥이라 불렸고, 김해공항에서 시내까지 도대체 얼마가 걸릴 지 예측조차 못할 때였다.

그러나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기자단을 태운 차량 행렬은 아무런 막힘없이 간담회 장소인 부산시청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찰 선도차와 교통통제 덕이었다.

그러자 경제부처 한 관리는 “부산의 교통대책은 경찰 오토바이와 순찰 차량만 늘리면 되겠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요즘 정부의 물가 안정대책을 보면, ‘순찰 차량만 늘리면 되겠다’던 그 공무원의 말이 예사롭게 생각되지 않는다.

물가를 잡겠다며 온갖 행정력을 동원하는 모습이 교통을 통제하면 통행이 원활해지지 않겠느냐는 발상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 데도...

서민들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생활에 정권에 등을 돌리는 모습에 억지로라도 물가를 잡아 보겠다는 정부 당국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하고, 주무부처가 으름짱을 놓아 가격 인상을 억제할 경우 효과는 그 때 뿐이다. 문제는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행정력 동원은 더 큰 후유증을 낳는다는 점이다.

당장 기름값이 그렇다.

정부는 기름값을 리터당 100원 정도 인하하도록 강제했지만, 7일 새벽 0시면 3개월의 시한이 끝난다.

가격 환원을 앞두고 갖가지 잡음이 들리는 것은 가격을 내리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주유소에서 정유사들의 공급가가 오를 것을 대비해 기름 사재기를 하고 있고, 정유사들은 제품 출하를 미루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돈이 왔다갔다 하는 데 누가 하지 않겠는가.

또 내릴 때는 공급가를 내세워 가격 인하에 소극적이었던 주유소들이 올릴 때는 그동안 재고의 입고가와는 상관없이 일제히 올릴 것으로 보여 기름값 환원에 대한 심리적 충격이 더 클 수도 있다.

정유업계 2위인 GS칼텍스가 단계적으로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다른 주유소들의 동참 가능성도 있으나, 일선 주유소에서 통할 지도 의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기름값 환원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려 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어느 정유사는 3개월 동안가격을 내린 결과 적자로 돌아섰다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적자를 보전해 주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런데도 기름가격을 담당하는 지식경제부 장·차관은 정유업계가 기름값을 일시에 올리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면에는 말을 듣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정부의 압박으로 들린다.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면 환율과 금리, 세금 등 거시정책수단을 쓰는 게 맞다. 기름값이 부담스럽다면 기름값의 50%에 달하는 유류세를 내리는 게 먼저다.

유류세 인하라는 솔선수범을 않은 채 민간기업에만 고통을 전담하라고 한다면 설득력이 없다.

지금이라도 유류세 인하를 비롯해 재정지출을 줄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의 개혁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을 성장보다 물가안정에 치중키로 했다면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는 게 옳다.

정책 대신 오르는 품목마다 공정위와 국세청을 동원할 것인가. 물가는 오락실에 있는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가격이 오르는 품목을 내려친다고 잡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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