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갤빈가문, 무선왕국 모토로라 전문 경영인에게 바통터치

입력 2011-05-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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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가문이 경영권을 대물림하며 몰락해가는 것을 가리켜 ‘부덴브르크 현상’이라고 부른다.

부덴브르크 현상은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이 1901년 무역업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유럽 상인가문의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 ‘부덴브르크가의 사람들’ 에서 따온 말이다.

이러한 부덴브르크 현상의 가장 대표적인 실례가 세계적인 무선통신업체 모토로라를 창립한 갤빈가문이다.

갤빈가문은 창업주 1세대에서 3세대로 내려오면서 기업가적 재능이 쇠퇴하면서 모토로라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전문 경영인에게 내줬다.

갤빈가문은 2004년 1월 에드워드 젠더 회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76년간 모토로라를 경영했다.

▲모토로라의 폴 갤빈 창립자
모토로라의 창립자 폴 갤빈은 1928년 총 자본금 565달러를 갖고 5명의 종업원과 함께 시카고에 모토로라의 모기업 갤빈제조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큰 배터리로만 작동하던 라디오를 가정용 전기로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류기를 개발해 제품을 출시했다.

폴 갤빈은 1930년대에 처음 자동차용 라디오를 개발해 ‘모토로라’라는 상표를 붙인데 이어 1947년에 이를 회사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모토로라는 이름은 세계2차대전을 계기로 널리 알려졌다.

1950~60년대에 모토로라는 무전기의 대명사로 군 통신병들 사이에서 통신장비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불리게 된다.

특히 무선주파수를 이용한 통신장비인‘워키토키’란 상품명의 모토로라 무전기는 실제 전쟁터에서 매우 효율적인 장비로 이용됐다.

모토로라는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다.

1950년대 말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설립했으며 1960년대에는 미국 우주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 수많은 유인ㆍ무인 우주선의 통신장비와 설비를 개발했다.

1969년 7월 달에 착륙해 “인간의 작은 발걸음 하나, 그러나 인류가 성취한 거보”라고 외쳤던 닐 암스트롱의 생생한 육성이 지구에 전달된 것은 바로 모토로라가 개발한 우주통신용 무전기를 통해서였다.

이후 폴 갤빈의 아들 로버트 갤빈이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모토로라는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로버트 갤빈
로버트 갤빈이 최고 경영자로 재직하던 1959년부터 1990년까지 모토로라는 반도체와 휴대폰, 통신장비 분야에서 경쟁 상대가 없었을 정도다.

로버트 갤빈이 주도한 반도체 사업부는 1974년 첫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선보인 이후 휴대폰에 이어 2번째 큰 규모로 성장했다.

최초의 셀룰러 장비와 휴대폰을 선보이며 이동통신 시장에서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1964년 차량용 통신기기를 생산하면서 휴대폰 개발의 기반을 닦았다.

모토로라는 1973년 양방 통화가 가능한 VHF 라디오 텔레폰(카폰)을 개발한 데 이어 1983년에는 셀룰러 시스템과 함께 ‘다이나택(DynaTAC)’이란 최초의 휴대폰을 내놓았다.

로버트 갤빈은 1980년대 말 품질혁신 운동을 시작해 21세기 대표적인 경영전략인 식스시그마를 처음 도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3세대 크리스 갤빈
그러나 1997년 3대 회장인 크리스 갤빈 취임 이후 모토로라는 경쟁사들에 밀려 점차 입지가 줄어들었다.

크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기업가 기질을 보여주었고 1973년에 모토로라에 입사해 20년 이상 잔뼈가 굵었기에 취임 당시만 해도 주변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곧 이어 터진 아시아 경제위기 등의 여파로 모토로라의 실적은 급추락하기 시작한다.

우선 반도체 부문에서는 세계적인 칩 수요 감소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대부분 기업들이 팹 건설을 통해 효율성 증대를 꾀할 때 모토로라는 칩 기술을 다른 기업으로부터 라이선스하고 생산도 아웃소싱하는 등 자본지출을 최소화하는 데만 급급했다.

휴대폰 사업부도 디지털화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면서 노키아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모토로라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1995년 54%에서 2000년 11%로 뚝 떨어졌다.

모토로라가 26억 달러를 투자한 위성통신사업인 이리듐은 1999년 파산했다.

결국 모토로라는 2001년 39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크리스토퍼 갤빈은 전체 15만명의 인력 중 6만명을 구조 조정했다.

모토로라의 주가도 이를 그대로 반영해 크리스 갤빈이 취임하기 직전인 1996년 12월 31일 20.42달러였던 것이 퇴임 직전 11.09달러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그리고 2003년에는 반도체 사업부 분사를 결정했으며 그 해 9월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3대에 걸친 갤빈가의 가족경영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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