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9.11 뱅크런의 추억’

입력 2011-03-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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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사건은 세계 금융시장을 패닉상태로 몰아갔지만, 두바이는 최대 수혜자가 된다. 당시 세계적인 투자은행은 물론 신흥국 국영은행, 투자유치 기관들은 9.11 테러 이후 밀려드는 투자자들의 인출요구에 문을 걸어 닫고, 인출을 거부했다. 두바이는 달랐다. 투자자들의 지불요구를 전부 들어준 것이다.

그 덕에 두바이 투자가 활발했던 영국 벨기에는 물론 러시아계 투자자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주변 왕족 출신의 투자자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인출거부를 당했지만 두바이에서만 투자한 돈을 쉽게 인출할 수 있었다.

초(超) 비상시기에 두말 않고 돈을 내준 두바이의 용단은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 당시 왕세자(현 통치자)가 있어 가능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두바이의 생존을 위해 외화 유치에 국운을 걸고 있던 모하메드의 용단은 위대한 변화를 낳았다. 투자자 사이에 두바이 당국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투자자들이 들고 나오던 돈가방을 되 맡기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모하메드의 인출 결정은 세계적인 투자자들은 두바이로 끌어들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세계금융 위기의 여파로 지금은 그 열기가 사그라들었지만 두바이의 천지개벽은 이렇게 시작됐다.

미국의 메트라이프도 9.11테러 사건으로 세계적인 생명보험사로 우뚝 서는 계기를 만들었다. 메트라이프에 가입한 9.11테러 사건이 터지자마자 긴급 중역회의를 열어 사건 1시간만에 메트라이프에 가입한 희생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결정한 것이다. 메트라이프는 심지어 실종자에게도 ‘사망진단서’없이 보험금을 지급했다. ‘先지급-後조사’로 가뜩이나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는 고객에게 위안의 손을 내민 것이다.

메트라이프는 9.11테러 사건으로 2억달러의 손실을 입었지만 신속하고 과감한 보험금 지급은 고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후에 메트라이프는 선지급 등으로 커다란 보험손실을 입었지만 이후 고객 증가로 오히려 10억달러 이상을 얻은 것으로 자평(自評)했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두바이와 메트라이프가 ‘위대한 용단’으로 얻은 것은 ‘시장의 신뢰’(信賴)다. 시장은 신뢰를 먹고 사는 유기체다. 신뢰가 없으면 시장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의 가치조차 없다. 신뢰가 두려운 것은 신뢰를 얻기는 어렵지만, 어렵게 얻은 신뢰를 한 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시장의 신뢰지수는 몇점인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대형 프로젝트들에 대한 대통령의 잦은 말 뒤집기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둘러싼 당국자들의 말 바꾸기,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금융위원회 최고 책임자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듯한 거짓말, ‘관치’(官治)에 의한 시장 억누루기 등이 시장의 불신을 야기하는 실정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점에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에 의해 시장의 신뢰가 붕괴 위협을 받는 것은 심각한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 이들의 불신조장은 구조적으로 파급력이 크다. 이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과 무형의 국가 자산을 심대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 홍수 태풍 구제역 등의 각종 재난보다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에 끼치는 악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시장 신뢰지수를 메기자면 지난 서울 G20 정상회의에 참가했던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아도 신뢰지수가 낮은 나라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09년 조사한 ‘한국의 사회적 자본수준’에 따르면 OECD에 속한 29개국 22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사회적 자본 중 신뢰지수가 OECD 평균 34.30에 한참 못미치는 28.80에 불과하다. ‘세계가치관조사’에서도 한국인의 ‘타인신뢰지수’는 30.2%로 선진국인 스웨덴(68.0%)은 물론 중국(52.3%)이나 베트남(52.1%)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있다. 경제규모나 생활수준, 국격(國格)에 비춰 볼 때 ‘신뢰’라는 사회적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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