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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가 되기보다 더비에 출주하는 말의 주인이 되고 싶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
마주(馬主)는 단순히 경주말의 소유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선진국의 경우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보장해 주는 핵심적 수단 가운데 하나가 된다.
프랑스 유명배우 알랭 들롱이 마주가 되고 싶어 수십 차례 마주 등록을 시도했지만 그의 폭력전과는 그를 평생 마주가 될 수 없는 신분으로 만들어 놨다. 그만큼 엄격한 도덕성 잣대를 들이댄다.
국내 마주들 중에도 저명인사들이 많다. 전·현직 국회의원, 장·차관, 기업 CEO, 문화·예술인, 연예인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특히 해외 비즈니스에 ‘마주명함’을 활용한다고 한다. 자신의 CEO 직함보다 마주명함이 계약 성사의 효자 노릇을 하기도 한다는 것. 이런 마주 사회에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을 위시한 30~40대 젊은 층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것. 재테크에 민감한 이들이 투자전략 차원에서 말을 사들이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중제-2000만원 마필 16억원 ‘대박’도…확률은 ‘로또’
먼저 수익률은 어느 정도일까? 일단 2006년 등장한 ‘제이에스홀드’ 얘기를 들으면 감이 잡힐 듯하다.
국내 최초 삼관마(메이저 3개 대회 석권)인 제이에스홀드의 몸값은 5000만원 정도. 국내 경주 마필이 2000만원부터 최고가 1억2000만원까지 분포하고 있다고 보면 중급정도 되는 마필이었다.
하지만 뛰는 대회마다 연달아 우승하며 상금을 휩쓸더니 급기야 2007년 뚝섬배, 코리안더비, 농림부장관배 등 국내 3대 경마대회를 독식해 버렸다.
가장 큰 대회 상금은 5억원가량. 이 가운데 절반을 선착 마주가 가져간다고만 봐도 벌어들인 돈이 어머어마하다. 알려진 것으로 몸값의 10배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이는 2005년 처음 마주가 된 한 벤처사업가의 실제 사례다. 문제는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라는 것.
대회마다 10~15마리 정도가 같이 뛰다 보니 우승확률은 크게 떨어진다. 게다가 혈통이 좋지 않은 저렴한 말들은 그만큼 선착 확률이 낮어질 수 있다.
즉, 2000만원짜리 싼 말이 상금 4000만원 상당의 대회(1군 경기)에서 우승하면 한번에 본전을 뽑고도 남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마주들은 혈통 좋은 비싼 말을 선호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다수 우승을 보장할 수 없는 법. 그래서 경주마 투자가 ‘로또’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3500만원짜리 국산마를 구매하게 되면 제반 관리비(위탁비), 요양비, 치료비 등(약 1500만원) 모두 5000만원(1년 기준) 정도 비용이 든다.
흑자를 내는 경우 평균 수익률은 5~10% 정도. 그러나 마주 가운데 적자를 보는 경우가 꽤 많다는 점은 항상 염두에 둬야한다.
중제-취미 겸 발 들여놓은 투자자…목장까지 사들이기도
이렇듯 돈 나올 곳은 상금뿐. 훈련시켜도 능력이 떨어져 상금도 못 타고 출전 기회도 줄다 보면 퇴출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품종 좋은 마필이 적다 보니 가는 곳이라고는 고기(100만원 정도)로 팔리거나 승마(300만원 정도)장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씨수말로 거듭나 교배를 통해 큰돈을 버는 경우가 많다. 씨가 좋고 선수 시절 호성적을 거둔 말은 교배 1회에 4억원(종부료)을 호가하기도 한다고.
이런 내용들을 알아챈 마주들이 최근에 진화하고 있다. 2007년 마주가 된 윤기섭(가명·60) 씨가 바로 그런 케이스. 미국 친구 권유로 마주가 된 사업가 윤 씨는 “이왕 마주가 되는 거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이웃 일본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씨수마를 들여와 키워 프랑스 개선문상, 호주 멜번컵 등 세계 유수의 대회에서 우승마로 배출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느낀다. A급 씨암말을 해외에서 들여와 국내 씨수마와 교배시켜 명마를 배출해 보자는 계산이 선 것이다.
우리도 초명마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선 시작으로 지난해 두당 7000만원 정도 하는 씨암말 20두 정도를 국내로 들여왔다.
혈통도 괜찮은 놈들로 골랐다. 경기도에 목장을 소유하고 있는 윤 씨인 탓에 공간은 넉넉했다. 그는 요즘에도 혈통학 등 말 공부에 열심이다.
머지않아 100억원쯤 하는 제대로 된 씨암말을 들여와 제대로 된 명마를 탄생시켜 볼 심산이다.
마주들끼리 협업 구상을 하기도 한다. 이는 오래된 마주들의 특징적인 행동. 자신의 말들이 헐값 취급을 받는 것을 보고 가슴을 친 이들은 먼저 은퇴시킨 개인마필을 씨수말로 활용한다.
이를 위해 목장에 지분투자를 하거나 아예 목장을 사들이는 경우도 있다고. 이 과정에서 욕심이 더 생긴 마주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품종이 나쁜 말을 사서 애물단지로 만들지 말고 A급 씨말을 사들여 돈 되게 제대로 키워보자는 복안이다.
중제-2년 연속 연소득 1.2억원↑, 재산세 150만원↑ 자격要
마주가 되려면 어떤 자격요건을 충족해야 할까? 과거에는 사회적 지위를 중요시했다.
국회의원, 장관, 대학 총장, 오페라 단장, 판사, 병원장 등 사회적으로 위치가 높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재계에선 이웅렬 코오롱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그룹 총수들도 전·현직 마주로 이름을 올렸었다.
이런 시류가 달라진 게 지난 2001년. 이때부터 경제적 기준을 강화하기 시작한 뒤 지금은 경제조건만 들이대고 있다.
2년 연속 연소득 1억2000만원 이상, 같은 기간 재산세 150만원 이상 납부 요건을 충족하면 된다. 최소한의 자격요건인 셈. 하지만 이 기준만 맞춘다면 마주가 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수억원 씩 버는 전문직 종사자가 많지만 세금기록 기준인 데다 소득을 낮춰 신고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또 일단 마주가 되면 1년 안에 말을 소유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 둬야 한다.




